동사의 맛 - 교정의 숙수가 알뜰살뜰 차려 낸 우리말 움직씨 밥상 한국어 품사 교양서 시리즈 1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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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을 보면 모든 낱말이 분명한 제 뜻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다른 낱말에 기대고 있을 뿐 그 자체로는 이도 저도 아니다. 낱말들이 서로를 눌러보고 눌러들어 주지 않는다면 어떤 낱말도 제 뜻을 가질 수 없을 테니까. 삶 또한 그렇지 않을까. 서로 눌러봐 주고 눌러들어 주면서 의미를 찾는 것일 뿐, 낱낱의 삶은 어차피 다 이도 저도 아니니까. (91쪽)

남자가 여자를 다시 만나려면 좋이 십 년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쯤이면 여자에ㅔㄱ 다시 다가간다 해도 아무도 상처받지 않으리라고 남자는 믿는다. 아니, 그렇게 바라고 있다. 이제 몸은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그 시간을 다그는 일만 남은 것일까. 몸으로 좁히지 못하는 거리를 마음으로만 다그며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는 시간. `다가가다`와 `다그다`가 남자에게 다그로 다가오는 의미다. (95쪽)

사랑하는 나와 사랑받는 나는 같은 나일까? 사랑하는 나가 곧 사랑받는 나이고, 사랑받는 나가 곧 사랑하는 나일까? 사랑하는 나는 사랑받는 나를 한눈에 알아보고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나가 사랑받는 나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면 사랑하는 나는 과연 사랑받는 나 말고 사랑하는 나도 사랑할 수 있을까? 혹시 사랑받는 나를 가장 믿을 수 없어 하는 것이 사랑하는 나이고 사랑하는 나를 가장 경멸하는 것이 사랑받는 나는 아닐까?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 또 있으랴. 그 힘들고 어려운 일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드는 모든 사람에게 바친다. `사랑하다`와 `사랑받다.` (139쪽)

시간이 흘러가는 건 지나는 것이고, 시간을 보내는 건 지내는 것이다. 지나면서 지내고 지내면서 지난다. 어차피 시간은 흘러가게 마련이니 내가 지내지 않아도 지날 것이고 지나지 않는 것 같아도 니잴 수밖에 없으리라. 시간이 지난 흔적은 내가 머문 곳에만 남는 것은 아니어서 내 몸과 마음에도 고스란히 남을테니까. (182쪽)

아는 척도 해 봤고 모르는 체도 해 봤다. 때로는 잘난 척도 했을 것이다. 척하고 체하는 건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니 과하지만 않다면 귀엽게 봐 줄 만하고 하는 사람 또한 재미로 여길 만하다. 그러니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척과 체`는 아는 척도 아니고 잘난 척도 아니다. 그건 바로 괜찮은 척하고 괜찮은 체한 것이다. 정말 괜찮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괜찮지 않다. 당신도 그런가? (191쪽)

사람은 들이고 방은 드린다. 아침에는 밥에 뜸을 들이고 저녁이 되면 가게를 드린다. `드리다`에는 요즘 잘 쓰지 않는 표현들이 담겨 있다. 가령 머리를 땋아 댕기를 물릴 때도 드린다고 하고, 집에 벽장이나 문을 새로 꾸미거나 마루나 방을 새로 만들 때도 드린다고 한다. 가게 문을 닫을 때도 드린다고 하며 곡식을 까부를 때도 드린다고 한다. (233쪽)

`통밀다`는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평균으로 치는 걸 말하고, `한통치다`는 나누지 않고 한곳에 합치는 걸 말하낟. 흔히 `통치다`나 `퉁치다`로 잘못 쓰는 말의 표준어가 바로 `한통치다`이다. (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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