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나아지는 건 너무나 어렵다는 것. 예전에는 많이 배우면 나아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이 진보하진 않아요. 시간이 지난다고 세상이 진보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37쪽)
하나의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 세계는 여러 겹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하나라는 것 등등등. (125쪽)
불안과 실패의 경험은 언제나 괴롭기만 한 것입니다.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고 해서 그 과정에 있는 불안과 실패도 좋았다고 볼 수는 없겠죠. 물론 몇 번 경험하고 나면 그 불쾌한 경험 없이는 소설을 완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긴 하죠. 그래서 예전보다는 덜 괴로워 한다거나 덜 짜증을 부린다거나 해요. 겨우 그 정도지, 좋은 것이니까 이 불안과 실패를 기꺼이 받아들이자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그건 불쾌하고 불편한 경험이에요. 그러나 말했다시피 지나고 나면 부정적인 경험은 우리 안에 남지 않아요. 캄캄한 어둠이라면, 우리 안에 남는 건 그 캄캄함이 아니라 그 어둠 속에서 미미하게 비치던 빛 같은 것이죠. 그게 기억의 속성인 것 같아요. 글쓰기는 기억을 닮았어요. 사람은 누구나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글로 쓰는 거죠.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경험을 망각해요. 이 의도적인 망각이 창작의 원동력이에요. 어쩌면 삶의 원동력일지도 모르겠고요. (139-140쪽)
기쁨은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지만, 그래서 아는 순간 바로 질투하고 시기할 수 있지만, 고통은 단 하나의 감각적 정보만 결여되어도 타인들은 그 고통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독이란, 그것도 이십억 광년의 고독이란 우리가 고통으로는 서로 연대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기인할 것입니다. 재앙은 우리를 가장 외롭고 연약한 사람들로 만듭니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이 연대 불가능한 고통 앞에서 위로 역시 불가능합니다. (177-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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