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한다는 것, 생각한다는 것은 곧바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지름길을 믿지 않는 것이다. 철학은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삶의 정신적 우회이다. 삶을 다시 씹어보는 것, 말 그대로 반추하는 것이다. 지름길이 아니라 에움길로 걷는 것, 눈을 감고 달리지 않고 충분히 주변을 살펴보는 것, 맹목이 아니라 통찰, 그것이 철학이다. 철학은 한마디로 초조해하지 않는 것이다. (29~30쪽)

세상의 존재들은 서로 비교를 불허하는 독특함을 가졌고,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고유의 덕을 지녔다. 우리가 어떤 존재를 안다는 것은 바로 그의 힘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고유한 `힘`을 이해하고 나서여 우리는 그 자체에서 수반될 수 있는 `약점`이나 `곤경`을 아무런 `악의`없이 그대로 볼 수 있게 된다. (45쪽)

어떤 학자들은 `소외`란 사람이 사물처럼 되는 것(사물화)이라 말한다. 사람들이 기계처럼 일을 하다 보면 자기 정신을 잃어버리고 사물처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외를 극복하는 것은 사람이 사물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래적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반대로 사물 편에서 문제를 바라보면 어떨까, 하고 나는 질문을 던졌다. 인간이 자연의 사물을 닮는 것은 끔찍한 일일까? 어쩌면 우리는 무턱대고 사물을 끔찍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닐까? 생명력이 없고 개성 없는 사물들, 도저히 닮고 싶지 않은 끔찍한 사물들로, 소외된 인간 이전에 소외된 사물이 있는 게 아닐까? (89~90쪽)

무엇을 하든, 모든 때는 똑같이 소중하다. 우리 삶에 `각별한 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각별한 때`는 우리가 모든 순간을 소중히 생각할 때 찾아온다. 함석헌이 다른 글에서 쓴 역설적 표현을 빌리자면, `각별한 때`를 따로 두지 않고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할 때 `각별한 때`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정말 읻는 사람에게는 `때가 장차 오지만, 지금도 그때`라는 말이 옳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장차의 그때`란 `지금의 이때`이기도 하다는 것,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입니다. (119~120쪽)

교양을 쌓는 호기심이 아니라 `나를 나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호기심,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길을 잃고 방황하도록 도와주는` 그런 지식욕,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정당화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지, 우리가 어디까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비판적 사유, 푸코는 그것을 철학이라 불렀다. (133쪽)

달리 말하면, 우리는 그 말들을 진지하게 믿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나 공자, 예수난 석가의 아름다운 말들을 구경만 했을 뿐, 그것들을 진지하게 체험하지 않아따. 우리가 믿는 것은 그들의 권위였지 그 말들이 아니다. 말을 믿었다면 우리는 벌써 그것을 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말의 실천이 아니라, 그 말을 한 사람에 대한 숭배로 나타낸다. 즉 우리가 믿는 것은 말들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점이다.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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