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클로짓 노블 The Closet Novel - 7인의 옷장
은희경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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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한 바퀴 돌아본 다음 처음부터 다시 보고 싶어져야만 성공한 배치라고 생각했다. 한 번 더 보고 싶어진다는 것은 전체 맥락을 이해했다는 것이고, 맥락을 이해한 사람은 전시를 처음부터 다시 보면서 디테일을 찾고 싶어한다. 두번째 볼 때 그림은 더욱 아름답다. (34쪽)

양은 그들의 사랑이 불투명한 도기 주전자에 담긴 뜨거운 청주 같은 것이었다고 의심해야 했다. 한 잔씩 따라 달게 홀짝이다 보면 이윽고 비어버리는 것, 퍼내어도,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술병은 없었다. (65쪽)

겨울은 혹독해. 그리고 끔찍하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길거든, 사실 추위보다 무서운 것은 어둠이야. 어둠과 추위는 사람들을 변하게 해. 슬프고 날카롭게 만들어. 사랑했던 이들은 이별하고, 말이 많던 이들은 침묵해. 도시는 텅 비고, 거리에는 아무것도 없어. 밤은 무한하게 늘어나, 마치 영원 같아. (96쪽)

시간은 지나가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여 사람 마음속 깊숙한 곳을 향해 탑을 쌓는다. 기럭 속에 가라앉은 시간의 끝은 뾰족한 바늘처럼 생겨서 사람들은 날카로운 시간의 기억을 다시 찾지 않을 만한,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숨겨놓는다. 그리곤 어디에 그 시간을 두었는지 잊어버리고선 우왕좌왕한다. 서로 사랑할수록, 서로의 시간이 많이 쌓일수록 그 끝은 심해 한가운데 버려진 바늘과 같아진다. 그 끝은 기억하지 못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왜 상처받고 상처주는지 모른 채 시간은 계속하여 흘러만 간다. 깊은 시간을 나눈 우정도 비슷하다. 우정은 시기와 질투 같은 다른 감정으로 얽히기 쉽다. 가족끼리 대화가 안 되는 이유는 대개 서로에 대한 감정이 먼저 튀어나와서인데, 친구 사이에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165쪽)

이상했다. 처음에는 지키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이 일을 시작했는데,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잃어야 그걸 지킬 수 있게 되는 건지 모르게 되었다. 그게, 그러니까 애초에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이 뭐였지?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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