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라면 또 모를까. 나는 여자니까,나보다 일찍 태어난 남자는 나의 형이 아니라 `오빠`가 맞는다. `형`은 남자 형제들끼리의 호칭 아닌가. 사전적인 정의에도 맞지 않는 야만적인 관계를 내게 강요하는 저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대학 캠퍼스는 모두가 친척인 씨족사회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남학생 위주로 돌아가는 대학 문화에, 위계질서가 또렷한 운동권의 문화에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언어에 아주 민감한 동물이다. (66쪽)
음식이든 책이든 한번 붙들면 뿌리를 뽑을 때까지, 지겨워질 때까지 하나에 골몰했다. 내 인생은 하나의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의 질주였다. 유년기의 극심한 허기를 경험한 자의 특징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141쪽)
불편하며 부당한 현실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그녀가 민중을 사랑하는 법을 나는 알고 싶었다. 분노를 표현하는 게 부끄럽다 생각해서인가, 아니면 정말 분노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일까. 분노 없이 혁명에 대한 열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222쪽)
사회주의란 대체 무엇인가. 이웃에 대한, 약자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던가. 내게 사회주의의 출발은 계획경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었다. 이론이 아니라 가슴으로 사회주의에 접근한 이들에게 소련의 몰락은 `해석`의 차원을 넘어선 무엇이었다.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상실이었다. (258쪽)
80년대가 내게 남긴 것은 이념이 아니라 `정서`이다. 이념이나 사상은 변할 수 있지만, 정서는 변하지 않느낟. 옷을 고르는 취향, 타인을 대하는 태도, 말버릇이나 헤어스타일은 한번 굳어지면 평생을 간다. 작은 것들에 대한 연민, 정의에 대한 갈증, 돈과 악수하지 않는 손, 권련게 굽실거리지 않는 허리를 그 시절은 내게 물려주었다. (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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