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3 - 교토의 역사 “오늘의 교토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교토는 천년 도읍지답게 많은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존.관리하는 데에도 성공하여 도시 전체에 역사적 향기가 넘쳐흐른다. 유럽의 역사 도시로 그리스의 아테네, 이탈리아의 로마가 있다고 하면 동아시아에선 중국의 서안, 한국의 경주, 일본의 교토가 있다고 답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교토가 돋보이는 것은 도시의 주변환경이 문화유산과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낮은 지붕의 전통 가옥과 가지런한 상점으로 이어지는 좁다란 옛길엔 고풍이 완연하다. (153쪽)

교토에 있는 수많은 절 가운데 청수사가 가장 인기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리앉음새, 이른바 로케이션(location)이 탁월한 덕분이다. 그 자리앉음새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비견할 만하다. 우리의 최순우선생이 [부석사 무량수전]이라는 수필에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멀어져가는 산자락을 바라보며 사무치는 마음으로 조상님께 감사드렸다'는 명구가 우리에게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다가왔듯이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인 오사라기 지로의 [귀향]에서 묘사된 청수사는 일본인들에게 그런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패전의 상실감에 차 있는 일본인들에게 청수사 같은 문화유산이 건재하지 않느냐며 다음과 같이 독백조로 말하고 있다.
늦은 봄에 청수의 무대에서 시가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마치 거짓말같이 보랏빛 아지랑이가 비껴 있고 여기에 석양빛이 비쳐 금가루를 뿌려놓은 것같이 보였다. 눈이 부시는 듯한 아름다움에 마음속으로 놀란 일이 있었다. 그 보랏빛은 순수한 일본식 그림물감의 빛이었고 흐릿하게 뭉개놓은 듯 차분히 부드러운 가락이, 그(주인공)가 돌아다닌 외국의 그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226-227쪽)

각 시대는 매 순간 개인의 삶이 있었고, 집단적 문화가 있었다. 어느시대나 정치. 경제. 사회적 모순을 안고 있다. 그것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그 과정에서 창조된 유물. 유적들은 이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 문화사다. 나는 지금 교토 답사기를 쓰면서 독자들이 은연중에 유물과 유적을 통해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익힐 수 있기 바라면서 교토 이전의 광륭사부터 시작해서 헤이안시대의 동사, 연력사, 청수사 그리고 후지와라시대의 평등원까지 서술했다. 답사기를 통해 내가 독자에게 말하고 싶은 입장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하다. (299쪽)

"일본인들은 대단한 스타일리스트들입니다. 형식적 규범을 잘 만들어 내고 또 이렇게 생긴 형식의 틀은 엄격하게 지켜요. 그래서 일본문화엔 일사분란함이 있고 가지런함과 정연함이 있죠. 나는 그게 일본이라고 생각해요. 한편 너무 획일적이어서, 자유분방한 우리 눈에는 가끔 답답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는데, 일본인 입장에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거 같아요. 우리 일본인들이 그 틀을 너무 곧이곧대로 지키는 바람에 가끔은 답답해요."
"일본어에 '유도리(원래는 유토리)'라는 단어가 있는데 정작 여유를 뜻하는 유도리는 한국인이 더 많은 것 같지 않아요?"
"맞아요. 그래서 제 입장에선 한국에 가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져요."
나는 그가 유도리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 한국인인 나에게 예의상 듣기 좋으라고 한 얘기로 새겨들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우리는 형식의 틀, 규율이 약하다는 얘기가 아닌가. (3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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