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걱, 하나님이 쩔쩔매시다니, 그걸 알고 싶어 펼친 글에 내가 쩔쩔 매었다. 오래동안 읽었다. 각 문장마다 어려운 단어가 많고 연결하여서도 이해가 힘든 문장이 많았다. 

예를 들어 "빈말조차 따스하게 잘 못하는 세태가 얼마나 비관적이었으면 그렇게 말했을까 싶으면서도 내심 나는 이런 그의 사랑관이 오랫동안 불편했다. '빈말이라도'의 그 '이라도'가 불편했고 사랑의 최선이 '빈말'이라는 그 따뜻한 비관주의가 은근히 씁쓸했다. 오늘 산행하면서 샘물가에서 나는 그 말을 바꾸어 빈말 '마저' '서늘하게' 채워나가는 몸의 실펀을 그가 쳐놓은 그물을 벗어나는 화두로 조탁해본다. 모든 말은 그 최초의 발화 순간 다 빈말이지만, 몸을 끌고 그 말의 빈 속을 채워갈 때 삶으로 성육화된다. 외교적인 따스함을 실질적인 서늘함으로 바꾸는 비용이 그 전환점에서 불가피해도 그렇게 진보해나가는 것이 말의 진정한 행로 아닐까 싶다. (빈말마저 서늘하게 채우기 중에서, 161쪽)" 

나의 무지때문이라고 빈번하게 스스로를 탓하였지만 그것만은 또 아니다로 애써 위로했다. 번역문도 아닌데... 결국 아는 만큼 이해했다. 새로운 시각으로 글을 읽어야 하는데 관습으로 굳어진 상태에서 이 글은 굉장히 낯설었다. 간간히 동의되는 내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의 내용에 대한 느낌을 기록하기 보다, 제대로 이해 못했기에 글의 표면을 탓하고 있다. 낯선 부분 극복하기가 숙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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