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도시 - 건축으로 목격한 대한민국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14년 1월
품절


건물로서의 학교가 증언하는 것은 교육의 철학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가 훈육과 처벌을 교육의 방법으로 채택했다면, 아니 일제 강점기에 채택된 것을 이어받았다면 이 캘리포니아의 학교 배치는 작은 사회 체험을 교육 방법으로 선택했음을 증언한다. -36쪽

깨끗하고 정돈된 내부가 아니면 투명한 건물을 자신 있게 만들 수 없다. 도시의 관점에서 본 투명한 건물은 그래서 건강하다. 내부의 움직임을 보여주면서 도시를 그만큼 활력 있게 만든다. -50쪽

문화는 밥과 반찬처럼 옆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 년에 한두 번 작심하고 다가가야 할 순례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것이 아직도 진행형인 우리 문화의 모습이다. -85쪽

건축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존재한다. 건물이 일상의 소비재가 아니고 다음 세대를 위한 문화적 환경이라는 가치관이 건축을 의미 있게 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존재 의미이면서 다음 세대에 대한 역사적 책임 의식이기도 하다. -115쪽

도시는 건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설, 음악, 영화에 담긴 도시의 모습은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도시가 지닌 문화적 자산들이고 도시를 의미 있게 만드는 것들이다. -122쪽

우리의 도시에서 역사는 어디에 있느냐고들 묻는다. 관광 엽서의 사진처럼 도시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물을 수 있다. 그러나 도시의 역사의 가치는 건물만이 아닌 문화 전체에서 찾아야 한다. -123쪽

즉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여 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시민들이 즐겁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의 도시를 만들어야 외부인들에게도 좋은 도시라는 것이다. -191쪽

도시 구석구석에 이웃의 시선으로부터 감춰질 수 있는 곳을 없애는 것이 안전한 도시를 만드는 길이다. 높은 담장을 쌓는 것이 아니라 담장을 없애는 것이 범죄를 막을 수 있다. 가로등도 차도뿐만 아니라 인도의 구석을 비출 수 있도록 별도로 마련되어야 한다. -214-215쪽

이전 세대는 다음 세대가 알아서 스스로의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데 불필요한 장애물을 만들지 말고 자유롭게 고민하고 판단할 수 있는 마당만 만들어주면 된다. 중요한 것은 자유로움이다. 사고의 자유, 지성의 자유.-261쪽

말과 글은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말보다 글이 보수적이라는 사실은 한국 말과 한글 사이의 특수한 문제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말과 글 사이의 간극을 좁히면서 그 품위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건강한 사회인의 책임이기도 하다. 그런 사회인의 집단이 문화적으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273쪽

나는 공정한 게임의 존재를 믿는다. 그 사회적 모습은 분배에 있다. 늘어난 생산력이 진보의 모습이라면 그 결과물을 어떻게 나누는가는 정의의 모습이다. 인간이 사회를 통제하기 위해 고안해낸 가치개념이 선이라면 인간능 악하게 태어나고 이 사회에는 만민에 대한 늑대들이 가득 차 있다. 그 늑대는 틈이 나면 언제나 사회를 장악하려고 하고 거기 저항해내는 힘이 정의에 대한 신념이다. 태어날 때 가지고 나는 것보다 정직한 노력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아야 하고 그 노력에 의한 경쟁이 공정하도록 만드는 것이 사회 구성원의 책임일 것이다. 이 사회는 정의롭지 않고 완전히 정의로워질 수도 없다. 그러나 좀 더 공정하게 만들려는 구성원의 노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사회의 정의롭지 못한 모습은 물리적으로 표현되어 도시에 깔린다.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보다 그렇지 않아도 좋을 곳에서 필요 이상의 대접을 받는 도시는 잘못되어 있다. 때로는 뻔뻔스럽게 드러나고 때로는 교활하게 숨어 있는 그 모습을 나는 애써 찾아내고 싶다. -300-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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