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통해 나를 언제나 지켜주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을 느낀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고통이 온몸을 휘감을 때, 나는 문득 내 아픈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는 보이지 않는 손길을 느낀다.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나를 지켜주는 불빛. 내가 상상도 못하는 아픔으로, 내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걸어가는 누군가의 슬픈 뒷모습을 바라본다. 이제 내게 사랑은 단념이다. 단념이란 가장 사랑하는 것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용기다. 이제 내게 사랑은 절제다. 절제란 나를 가장 기쁘게 해주는 바로 그것이 없어도 내가 잘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 아픈 사랑은 오직 완전한 단념과 절제를 통해서만 얻어진다.-48쪽
소중했지만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그들이 어느 새 내몸, 내 맘,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있음을 느낀다. 처음엔 그들이 지워지지 않는 문신 같았다. 떠올릴 때마다 새로운 아픔으로 다가오는 끔찍한 문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들을 잃어버렸다는 사실보다 내가 여전히 변함없이,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더 그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떠나간 이들이 몸 밖의 문신이 아니라 몸 안의 장기처럼. '이미 나보다 더 나다운 또 다른 나'가 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82쪽
오늘날처럼 국가의 힘이 강력해지고, 사회의 통치시스템이 거대해진 상황에서는 '정당한 복수'나 '의로운 살인'이라는 개념이 더욱 동의를 얻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어떻게 사적인 복수를 공동체적 정의로 바꿀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타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정의의 목소리를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는 일이 아닐까. 이를 위해서는 원한의 엄격한 절제가 필요하다. 아무리 슬프고 분해도, 분노의 에너지를 공감의 에너지로 바꾸는 '이성'이 절실하다. 위급할 때 발휘되는 이성이야말로 최고의 지성을 필요로 한다. 그리하여 정의는 슈퍼 히어로의 원맨쇼가 아니라 철저한 팀플레이로 완성된다. 가장 멋진 복수는 '적들이 흘린 피'의 질량이 아니라 사건과 관계없는 '제 3자가 흘린 뜨거운 공감의 눈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155쪽
아이는 단지 질문에 대한 올바른 대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귀찮아도 내 질문에 재깍 대답해주는 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아이들에게는 가방끈 긴 부모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무리 곤란한 질문을 해도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 더 나은 대답을 들려주려고 노력하는 부모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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