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일요일이 필요해 - 샛길 산책자 김서령의 쫄깃한 일상 다정한 안부
김서령 글.그림.사진 / 예담 / 2013년 8월
품절


심심하고 외로운지도 모르고 지냈던 우리는 만날 때마다 심심하고 외로웠던 시절에 대해 떠들었다. 말로 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고 말로 하지 않고 지나왔던 시절이 아까워졌다. 심심하고 외로웠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였으므로 심심하고 외로웠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일이 부끄럽지 않았다. -108-109쪽

그렇게 살면 외롭지 않아?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 어쨌거나 다행인 점이 있다면 나는 내 욕망을 읽는 법을 조금 알게 되었다는 거다. 내 몸이 원하는 것. 내속이 원하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가장 먼저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렇게 살면 외롭지 않아?라는 질문은 적어도 내게 불필요하다. -138쪽

길을 가다 소녀들을 보면 애틋하다. 저 소녀들은 지금 생애의 어디쯤을 허정허정 걷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왜 외로울까. 내가 소녀 시절 턱없이 외로웠기 때문에 그들도 외로울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소녀들이 비밀처럼 떠안고 있을 고독들이 나는 때로 두렵다. 까르르 웃다가도 한순간 얼굴을 바꾸어 눈물을 후두둑 떨어뜨릴 수 있는 시절.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시절. 나는 소녀들이 부럽지 않다. 예쁘다 해도, 부럽지 않다. -240쪽

그날 이후 자기야, 라는 호칭은 몹시 자연스러워져서 나중에는 이름 부르는 걸 잊을 정도로 그렇게만 불렀다. 그 남자를 아주 오래 만났다. 이제 더는 못 만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문득 알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먹어, 자기야. 그 말을 한 후 그의 표정이 아주 조금 흔들렸던 건 그가 자신의 '실수'에 놀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까 나를 부르려 했던 것이 아니라 나 이전의 다른 사람. 늘 자기야, 라고 다정하게 불렀던 다른 사람을 향한 호칭이 멋모르고 튀어나온 것이라는 걸 말이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에게 묻지 않았고 어떤 증거도 없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와 헤어졌다. -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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