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우유 - 그리움으로 찾아낸 50가지 음식의 기억
김주현 지음 / 앨리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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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탕 같은 날들 속에 반짝반짝 노랗게 빛나는 바나나 우유 같은 존재들.
무릎베개를 베고 있으면 귓밥을 파주던 아빠 냄새, 짧고 아련한 풋사랑, 푸른 바람 냄새 나는 여행, 잘 개킨 속옷, 후루룩 차진 면발.....
그런 작고 작은 것들.
그런 작고 작은 것들을 기억한다.
열탕 같은 날의 바나나 우유 같은 것들.
대단한 것들이 아니라
그깟 작은 것들이야말로 오늘을 지탱해주는 힘이니까.-7쪽

세상에서 제일가는 한 끼란 사실 진귀한 재료나 요리사의 솜씨로 이뤄지는 게 아니란 걸. 언제나 사람들이 최고의 한 끼를 꼽을 때면 추억이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돼 있다는 걸 말이다. -37쪽

누군가의 어께에 힘을 실어주는 일은 어쩌면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저 노란 달걀말이와 비엔나소시지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나를 생각해주는구나, 하는 안도감 같은 거.-40쪽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이지. 언제나 그렇지만 말이야. 세월이 흘러서 뒤를 돌아보면. 아, 그때, 그 시각, 그 1초가 생각나. 그때 그 말을 할 걸. 그때 시원하게 화를 낼걸. 그때 웃어줄걸......-111쪽

실수투성이 '풋'의 시간들. 서툴고 설익은 풋내 나는 시간들을 지나다 보면 가슴에도 푸른 멍드는 날이 많다. 그런 날은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그런 부드러움으로 가득한 무언가가 필요하다.-118쪽

몇 살 때이던가. 사랑이 지나가던 때, 사랑이 변하던 때, 그날.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든가, 날 사랑하긴 한 거니? 날 사랑했던 적은 있긴 한 거니? 우리가 사랑하긴 했을까? 등등의 참 민망하고 오글거리는 말들을 쏟아낸 때가 있었다. 스스로 이런 말은 정말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진부하고 상투적인 이별의 문장들을 쏟아내던 때, 그러면서 심장이 불에 덴 것처럼 통증을 느끼던 시간들. 독감처럼 밤이면 통증은 더 심해져서 숨도 못 쉴 것 같다는 노랫말 가사가 아, 이렇게 사실적인 언어였구나 하는 것을 통감하던 시간들. -141쪽

달이 사라진다면 그렇지 않아도 해저 100미터 즈음에 파묻어 둔 그리움 같은 건 수면에 떠오를 일 없을 거다. 그렇지 않아도 고갈되고 있는 지구의 낭만 같은 건 반쪽도 남지 않을 거다. 그렇지 않아도 마른 모래만 날리는 사람의 마음에 풀 한 포기도 나지 않을 거다. -160쪽

러스킨이라는 화가의 말처럼 늘 멀리 여행하고 싶어하는 열망은 사실 이곳에서 기쁨을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아주 작은 데서 기쁨을 끌어올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지금, 여기를 못 견뎌하지는 않겠지.-240쪽

아쉬워서 그리운 것들, 혹여 한번 다시 찾을 날이 있겠거니, 그렇게 그리워하며 사진 한 장 품고 사는 거. 심장에 그런 아쉽고 그리운 순간들을 사진 한 장처럼 품고 사는 거, 그게 꼭 바보 같기만 한 일은 아닌 듯하다.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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