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단어와 문장과 면들로 이루어진다. 문장의 한 부분을 이루는 단어는 의미로 가는 길에 떨어져 있는 관념의 한 조각이다. 단어라는 조각들이 모여 문장을 이루고 그 문장들이 연결되면서 의미세계를 창조한다. 책의 면은 선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다. 글자와 글자 사이, 행과 행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다. 면의 가장자리에도 빈자리가 남아 있다. 종이 면 위에 인쇄된 글자가 목소리라면 행간과 가장자리의 여백은 침묵이다. 그렇다면 책의 본문 편집은 단순히 글자를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와 고요함, 채움과 비움을 조합하여 책을 읽는 사람의 느낌과 생각이 물결처럼 순조롭게 흐르게 하는 고귀한 예술이다. -31쪽
우리에게는 일생 살아가면서 언제 어디서나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자유와 권리가 있지만, 청춘의 독서와 장년의 독서, 중년의 독서와 노년의 독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청춘의 시기에는 감성을 일깨우고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책이 필요하고, 장년의 시기에는 세상을 넓게 보게 하는 책과 직업활동을 위한 지식을 전달하는 책을 읽게 된다. 하지만 중년으로 접어들수록 점차 위로와 위안을 주고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마음을 다독거리고 보살펴주는 책을 읽게 된다. 그러다 노년이 되면 인생과 세상 전체를 관조할 수 있게 하는 지혜의 책을 가까이하게 되는 것이다.-90-91쪽
책의 '쪽'을 말하는 '페이지page'의 라딘어 어원인 '파기나pagina'는 포도나무가 늘어서 있는 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책읽기는 포도밭의 줄을 따라 돌며 여름 내내 뜨거운 햇빛을 받아 잘익은 진보랏빛 포도송이를 거두어들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162쪽
서로 다른 장소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각각 원하는 장소에서 각자가 선택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은 삶과 독서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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