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통보받는 순간, 나는 길거리에 그대로 주저않았다. 당시 한 달 정도 식음을 전폐한 채 살았던 것 같다. 싫다는 그를 붙잡기 위해 꽤나 쫓아다니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아주 좋아서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누군가의 일방적인 '내침'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모에게, 친구에게 항상 사랑만 받고 살았던 나인데 누군가가 처음으로 '싫다'고 한 것이다. 대체 어떻게 내가 싫을 수 있을까? 분명 같이 좋아서 시작한 연애인데 말이다. 이성 사이에서는 한쪽의 의사와 관계 없이 다른 한쪽이 '그냥' 싫어질 수도 있고, 그게 사랑의 끝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는 그 후로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35쪽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을까?' 싶은 후회로 남은 이별도 겨울에 왔따. 속보가 이어지는 장기 취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뼛속까지 냉기가 파고드는 날, 취재 한번 해보겠다고 무작정 건물 밖에서 몇 시간씩 서 있고, 심지어 새벽 서리까지 맞으며 밤을 새우기도 했다. 얼굴에 새빨갛게 동상이 걸리기도 했다. 그는 그런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던 사람이었지만, 그냥 몸이 피곤하고 그때 나의 그런 상황이 힘겨워서 모든 화풀이를 그 사람에게 했다. 빙산처럼 크고 차가운 건물만 들여다보고 있었더니 내 마음도 얼어버렸나 보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가 얼마나 나를 위했었는지, 나 때문에 얼마나 황당했을지 이해가 갔다. 하지만 마음의 시차는 그 무엇으로도 극복할 수 없었다. -173-1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