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 나는 새 숟가락 두 개만이 신혼집 살림의 전부는 아니다. 각자 들고 온 두 권의 낡은 앨범과 그 속에 들어 있는 사진 한 장 한 장이 지닌 사연과 의미를 이해하는 것부터 진정한 세간 장만의 시작이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 상대가 살아온 시간의 흔적과 기억,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긴 습관과 상처의 골을 알아주고 보듬어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없다.-30-31쪽
저 문은 열고 들어가면 추억을 함께할 누군가 초저녁처럼 옅지만 화사하게 검은 커피 한잔을 두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그리웠다는 말은 끝내 못할 것이다. 미안했다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대신 그 모습을 가득 눈 안에 담아볼 것이다. 안부를 묻고 환한 웃음을 나누고 커피를 마실 것이다. 꼭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던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 목소리를 듣고 커피 잔을 잡은 손끝에 묻은 체취를 맡으면 지나간 나의 그리움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것이다. 그 사람은 잘 지내고 있을까.-2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