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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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아이를 보고 있구나." 토란 튀김을 포크로 찍으며 엄마가 말했다. "그러면 안 돼?"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는 필요 이상으로 정색했던 것을 후회하며 덧붙였다. "예쁘단 말이야. 나도 모르게 자꾸 보게 돼. 왠지 눈길이 가고 마는걸." 엄마는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며 말했다. "바보 같으니. 왜 그런지 모르겠어?" 엄마는 샴페인을 물처럼 꿀꺽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다. "질투잖아, 그거."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질투? 하지만 아직 어린애인걸, 말도 안 돼." "바로 그거야. 아이와 어른의 중간, 네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을 둘 다 가지고 있으니까. 지금밖에 가질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생명력이 저 아이에게는 있으니까."-36-37쪽

"아빠와 엄마는 이혼했지만, 엄마는 앞으로도 쭉 미우미의 엄마고, 아빠도 쭉 미우미의 아빠야." 그 말을 듣던 날의 일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I know.'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정말로 알고 있었다. 학교 수업에서도 배워 알고 있었고, 우리 반만 해도 부모가 이혼한 아이가 몇 명이나 있었다. 무엇보다, 아빠에게 그 말을 듣기 전부터 엄마가 수차례 그런 뜻을 비쳤다. 아빠랑 엄마가 이혼해도 상관없겠냐고 묻거나, 아빠나 엄마나 '순수하게' 마음 깊이 나를 소중히 생각한다고도 했다. 그 전부를, 나는 물론 알고 있었다. -120쪽

남편을 알기 전에도 누군가를 좋아한 적은 있었다. 애인이 없을 때보다 있을 때가 훨씬 즐거웠다. 그때마다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내 생각이긴 하지만, 만약 정말로 연애 관계 이외의 것을 바라지 않고지낼 수 있다면 애인을 만드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내 시간과 육체, 거짓 없는 말, 그리고 호의와 경의. 내가 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지만, 그 다섯 가지를 받고 만족하지 않는 남성은 없다. 그래서 남편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도 나는 그 다섯 가지를 주고 남편에게서도 똑같은 것을 받았다. 고작 다섯 가지! 그것만으로 충분할, 고작 그 다섯 가지. 하지만 우리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리라. 우리의 탐욕은 끝이 없었다. 낮이고 밤이고 몸을 섞고, 낮이고 밤이고 말을 섞고, 함께 살면서도 여전히 성에 차지 않아 더한 속박을 바라고 소유를 바라고 질투와 말다툼을 바랐다. 서로를 모조리 갖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의 존재를 바라고 그의 부재가 가져다주는 공허함도 바랐다. 그이만이 내게 줄 수 있는 감미로움을 바라는 것과 거의 같은 크기로, 그이만이 내게 줄 수 있는 고통을 받았다. -160-161쪽

나는 다시 한 번 말하고 남편 목에 팔을 둘렀다. 볼과 볼을 대고 피부 냄새를 맡는다. 이제 몇 분 후면 남편은 나가버린다. 내가 알지 못하는 장소로 가서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곳에서의 남편은 내가 알지 못하는 인격을 두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힘껏 남편을 끌어안는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남자와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다음번에 만났을 때 이 남자가 새롭게 나를 발견해주길 기도하면서.-224-225쪽

전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다가 문득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슈코 씨는 그때 아빠와 긴 '산책'을 나갔었다. 낮잠 잘 시간에 아빠 방에 놀러 오면 돼요. 내 말에 슈코 씨는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그럼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했다. 승마후, 덥고 먼지 많은 길에 앉아서. 그때 그 여자와, 지금 이렇게 하라 씨 옆에 있는 슈코 씨가 나로서는 잘 연결되지 않는다.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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