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독서 -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읽기
이현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2월
품절


그리고 이 책에서 저는 고전을 최대한 우리 가까이에 갖다놓고 싶었습니다. 가까이 갖다놓는다는 게 집 현관에 갖다놓거나 부엌에 갖다놓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작품이 갖는 보편성을 발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발견은 자기 발견의 구문으로 이루어집니다. '나는 햄릿이다', '나는 돈키호테다', '나는 보봐리다'라는 식입니다. 이런 작품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각자가 자기 안의 햄릿과 돈키호테와 파우스트와 돈 후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배합비율까지도 예민하게 의식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이 주인공들이 바로 근대인의 전형적 초상이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그렇다면 이 작품들은 남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고뇌와 욕망과 광기와 탄식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것이 고전이 갖는 현재성이라고 생각합니다.-7-8쪽

엠마는 욕망을 채우려고 했지만, 이게 거의 화수분 수준이라 충족하지 못한 채 삶을 탕진하게 됩니다. 아무리 돈을 써도 충족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욕구는 채우되 욕망은 버리라는 것이 구태의연할지라도 지혜로운 대답이겠지요. 하지만 이성복 시인의 시에서 나오듯이 욕망이 없다면 이 삶이 얼마나 단조로울까요? 우리는 그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엠마의 욕망하는 삶이 비난받을 만하다면, 별 욕망이 없는 샤를르의 아주 단조로운, 그저 욕구만 있는 삶이 바람직한지 혹은 지혜로운 건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가 욕망에 대해 남긴 교훈입니다. "무엇을 위해 저잣거리를 헤매는가? 삶이란 그다지 많은 것도 아니고 긴 것도 아니다." 우리가 이렇게 단순하게 교훈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마담 보봐리]라는 긴 소설을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각보다 복잡하다고 느낀다면 읽어볼 수 있습니다.-43쪽

"아무리 가장 행복한 여성일지라도 여성으로서의 삶이란 과연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과연 행복한 여성, 불행한 여성이 따로 있는 건지 의문을 품게 되죠. 불행한 여성은 그렇다 쳐도 행복한 여성은 그래도 살 만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여성의 삶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전에는 행복한 여성은 그래도 다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거기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대단히 도전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첫 단계로 사회조직을 모두 깨부수어 새로이 세워야 한다. 그러고 나서 남성의 천성 자체나 오랫동안에 걸쳐 천성이 되다시피 한 유전적인 습관을 여성도 정당하고 적절한 지위 비슷한 것이나마 차지하게 될 때까지 뿌리째 뜯어고쳐야 한다." 이것이 헤스터 프린의 '여성 해방론'입니다. -73-74쪽

"한 여자와 제대로 관계를 맺느냐?" 이게 인생의 핵심 문제입니다. 그럼 전쟁도 없다는 거죠. 좀 과도한 해석이기는 하지만 요즘 나오는 어떤 심리한 책에는 젊은 남자들이 욕구를 풀지 못해서 전쟁이 일어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욕구해소가 안 되니 그게 공격적 본능으로 발산된다는 거예요. 멜러즈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나는 한 여자에게 즐거움과 만족을 얻고 싶었던 것이고,또 그것을 결코 얻지 못했던 것이오. 왜냐하면 여자가 나에게서 즐거움과 만족을 똑같이 얻지 못할 때 나도 그녀에게서 그것들을 결코 엳을 수가 없기 때문이요." 이게 핵심이에요. 로렌스의 성에 대한 생각의 핵심은 진정한 만족은 어느 한쪽만의 만족으로 얻을 수가 없다는 거죠. 왜냐하면 자기만족이란 상대방의 만족에서 얻을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죠. 두 사람이 일치돼야 하는데, 이건 좀처럼 일어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코니나 멜러즈도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로랜스의 핵심적인 성애관이 나옵니다. "남자가 따뜻한 가슴으로 성행위를 하고 여자가 따뜻한 가슴으로 그걸 받아들인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잘되리라고 나는 믿고 있소."-121-122쪽

햄릿의 복수가 왜 지연되는가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프로이트적인 해석부터 법률가적인 해석, 해석할 수 없다는 허무주의적 해석도 있습니다. 작품을 읽는다는 건 "무엇을 이해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안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햄릿을 이해하려고 하면, 그가 왜 복수를 지연시키는지 알아야겠지요.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면 편하겠지만, 이해해보고자 한다면 거쳐야 하는 문제가 많습니다.-139-140쪽

돈키호테의 태도는 '이상이라는 게 이미 사라진 시대착오적인 것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이걸 고수하겠다'라는 쪽에 가까운데, 이건 그 이상이 진실이라고 '믿는'태도와는 좀 다릅니다. 그게 진짜라고 믿는 것과, 그게 허상이고 이미 현실성이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고집하는 것, 즉 현실과 이상 사이의 긴장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별개의 태도죠. 산초 같은 현실주의자는 오직 하나의 현실 하나만 갖고 있어요. 투구와 세숫대야 중 세숫대야의 세계만 갖고 있는데 보통은 그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돈키호테가 경험하는 현실이란 양면적입니다. 멀쩡한 정신의 우리들도 이건 별로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돈키호테는 둘시네아에 대한 기사도적 사랑에 빠져 있지만, 보통 사람들도 사랑에 빠지면 양면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 남자가, 혹은 그 여자가 평범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동시에 나에게는 특별하다는 걸 알고 있죠. 물론 심하게 빠져 있다면 "네 눈에는 저 사람이 평범해 보이냐?"라고 발끈할 수도 있죠. 하지만 보통 "네 눈에 평범하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내게는 특별해 보여"라고 생각하죠. 과연 이게 광기일까요?-180-181쪽

그런데 여기서 '생각'이 문제입니다. 파우스트가 그레트헨에게서 가장 강렬하게 원했던 걸 갖게 된 그 순간에, '딴생각'을 하게 됩니다. 생각이라는 건 만족감이 다 채우지 못한 빈틈 같은 겁니다. 그 틈새를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게 점점 커지고 권태를 유발하게 됩니다. 이게 파우스트의 병입니다. 푸슈킨은 문학작품을 통해 학습한 '권태'를 파우스트라는 희곡을 통해 보여줍니다. 만약 이런 '생각의 과잉', '의식의 과잉'에 의한 권태가 근대적 인간의 공통적 특징이라고 한다면, 파우스트는 우리 모두의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205쪽

돈 후안주의란 현재의 충만을 근거로 해서 미래의 죽음과 죽음 이후의 심판을 거부하거나 간과하는 태도입니다. 현재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거죠. 실상 현재란 '지나가는 것'입니다. 청춘도 기분상으로는 영원할 것 같지만, 지나가고 있거나 이미 지나갔지요. 그것과 비슷합니다. 돈 후안주의는 시간의 힘에 대해서 간과하는 태도를 갖고 있어요. 다르게 말하면 돈 후안주의는 현재의 젊음, 젊음의 현재를 어떤 규범으로부터도 벗어나 있는 제약 없는 것으로 숭배하고 예찬하는 태도입니다. 그게 핵심입니다. 그에 비하면 돈 후안의 여성 편력이라든가 쾌락주의라는 건 부차적으로 따라붙는 겁니다. 푸슈킨의 '여성 돈 후안' 라우라의 남성 편력이 말해주는 것도 그런 거죠. 하지만 퓨수킨은 이런 식의 '젊은 지상주의'가 갖는 매력과 위험을 동시에 파악하고 있고, 돈 카를로수와의 대사에게 이미 그걸 이야기합니다. -246-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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