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가 즐겨 마시는 커피의 종류를 알고, 네가 하루레 몇 시간을 자야 개우낳ㅁ을 느끼는지 알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와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인가? 나는 네가 커피 향을 맡을 때 너를 천천히 물들이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일곱 시간을 자고 눈을 떴을 때 네 몸을 감싸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네 귀에 가닿을 때의 그 느낌을 모른다. 일시적이고 희미한, 그러나 어쩌면 너의 가장 깊은 곳에서의 울림일 그것을 내가 모른다면 나는 너의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9쪽
사람과 사람이 만나 받침의 모서리가 닳으면 그것이 사랑일 것이다. 사각이 원이 되는 기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말을 좀 들어야 한다. 네 말이 내 모서리를 갉아먹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너의 사연을 먼저 수락하지 않고서는 내가 네게로 갈 수가 없는 것이다. -42쪽
실연의 아픔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사내에게 그의 친구가 이렇게 위로한다. "이봐, 그 여자 말고도 세상에 여자는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이걸 위로라고 하고 있다. 사내가 잃어버린 것은 '이 여자'다. 포인트는 '여자'가 아니라 '이'에 있는 것이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어떤 다른 '한' 여자도 사내의 '이' 여자를 대체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위로는 허름하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결국은 그렇게밖에는 위로할 수가 없다. 유일무이한 '이 여자'가 세상에 얼마든지 있는 '한 여자'로 전락할 때 고통은 사라진다. -85쪽
시절은 가을, 너절한 슬픔들의 침투에 심신이 허약해지는 계절이다. 그러나 얼마나 다행인가. 하마 나는 너를 잊었다. 그리고 이제는 너를 잃은 슬픔까지도 다 잊었다. 그런데 왜 즐겁지가 않은가. 뭔가 한 뼘 더 타락한 듯도 하고 영혼의 뱃살이 늘어난 듯도 한 이 기분은 뭔가. 슬픔이 유통 기한을 넘기면 씁쓸함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거, 씹어 먹으면 아마도 이런 맛이겠지.-95쪽
강압적 일제 고사 시행에 반대하는 교사들을 해임해버리자. 정부정책을 냉소하고 미래를 함부로 예측하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잡아들이자. 낙하산 사장 취임에 반대한 한국방송 직원들은 취임직후에 잘라버리자. 그리고 이제는, 생존권을 주장하며 저항하는 철거민들은 특공대를 투입해 진압하자......라는 생각을 할 수는 있다 치자. 놀라운 것은 그들이 '한번 생각해보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실행에, 옮긴다. 이 사태는 이제 정치학이 아니라 정신병리학의 소관처럼 보인다. 이 정권은 환자다. 그들에게는 초자아(Super Ego)가 없는가. 민주화 이후 그토록 더디게 우리 내면에 겨우 자리잡은, '이런 일은 이제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는, 그 초자아가 그들에게는 없는가.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죄의식도 없는 것이다. 이드(Id)만 있는 권력이라니. 꿈이 곧 현실이고 소망이 곧 실천인, 그런 권력이라니.-163쪽
지방 선거가 끝났다. 4년 만에 '생각'이라는 것을 하느라 진땀 뺀 정치인들은 다시 생각 없는 삶으로 복귀했고, 4년 만에 공화국의 주인 대접을 받느라 머쓱했던 우리는 다시 힘없는 백성의 자리로 복귀했다. '그들만의 축제'가 남긴 결과는 해괴하다. -234쪽
그러나 자식의 잘못을 아비의 잘못으로 돌리는 유교 문화권의 전통이 늘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방법'이어야 한다. 자식이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정도의 효과만을 발휘할 때 그 방법은 가치가 있다. 문제를 일으킨 개인이 스스로 책임을 떠맡을 때 역설적이게도 그 개인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반대로 아비가 책임을 질 때 자식의 개인성은 소멸된다. -245쪽
우리가 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대상은 공인(公人)이다. 한 개인의 업무과 공익(公익)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을 경우 그 개인의 판단과 실천은 공적인 속성을 갖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연예인은 공인인가?-260쪽
당위와 현실이 팽팽하게 긴장할 때 고뇌가 생겨난다. 당위의 힘이 과도하게 커지면 억압이 생겨나고 현실의 힘이 지나치게 커지면 마비가 올 것이다. 그러니 자주 흔들리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일 것이고 고뇌는 건강한 사회의 증명서일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어렵고 옳고 아름다운 것들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되면서 우리 사회는 점점 고뇌하는 법을 잊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275쪽
시간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건, 그것이 한 생이 함유하고 있는 기쁨과 슬픔의 배합 비율을 바꾸지는 못할 겁니다. 중요한 건 시간이 '흐르는' 방식이 아니라 시간을 '사는' 방식이겠지요. -338쪽
이렇게 생각한다. 시는 엇갈림과 사무침의 화석이다. 세상과 나의 조우는 실패해야만 한다. '너무 빨리'가 세상의 시간이고 '너무 늦게'가 나의 시간이다. 그 시차(時差)가 서정일 것이다. 심지어는 내가 나 자신과도 엇갈리고 사무쳐야 한다. 술에 취하면 그런 시들을 찾게 된다. 술 깨고 싶지 않은 것이고 계속 아프고 싶은 것이다. 술자리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극복과 위로와 깨달음이 아니라 그것들과의 애틋한 거리다. 서정이라는 것도 어쩌면 그렇게 빤하고 애틋한 수작이다. -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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