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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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좇지 않는 인생이란 채소나 다름없다"라고 누군가 단호히 말하면 무심결에 "그런가?" 하게 될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채소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채소마다 마음이 있고 사정이 있다. 하나하나의 채소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면, 지금까지 인간으로서의 내 인생이란 대체 무엇이었을까 하고 무심코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그럴 때도 있다).-15쪽

무슨 일인가로 확 열이 받아도 그 자리에서는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고 한숨 돌렸다가 전후 사정을 파악한 뒤에 '이 정도라면 화내도 되겠어' 싶을 때 화를 내기로 했다. 이른바 '앵거 매니지먼트'다.-44쪽

사람을 신뢰하면서 신용하지 못하는 인생이란 것 역시 때로는 고독한 것이다. 그런 미묘한 틈, 괴리 같은 것이 통증을 초래하여 우리를 잠 못 이루게 하는 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아, 이런 건 그냥 미트 굿바이잖아'라고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견뎌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트 굿바이(meat goodbye) : 자이언트의 전 감독 나가시마 시게오 씨는 근육이 파열된 것을 '미트 굿바이'라 불렀다고 한다.(p52)-55쪽

우리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다음에 또'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68쪽

가장 무서웠던 순간은 하와이 바다에서 웅덩이 같은 곳을 헤엄쳐 지날 때였다. 그곳만 바닥이 움푹 깊어졌다. 물은 한없이 투명하고 정적 그 자체여서 마치 고층빌딩 틈새의 상공을 맨몸으로 떠다니고 있는 듯한 착각이 엄습했다. 고소공포가 있는 나는 앞이 캄캄하고 등이 오싹해지면서 몸이 움츠러들었다. 악마도, 깊고 푸른 바다도 어쩌면 바깥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 한없이 깊은 해저의 웅덩이를 떠올릴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그것은 늘 어딘가에서 잠재적으로 우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107쪽

아,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하면 수집(마음을 쏟는 대상)할 때의 문제는 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얼마나 그걸 이해하고 사랑하는가, 그런 기억이 당신 안에 얼마나 선명히 머물러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이 커뮤니케이션의 진짜 의미 일 것이다. -123쪽

생각해보면 진짜로 상대를 싫어한다면 "네가 쓴 글이 싫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가진 않을 터다. 논리적으로 옳다. -131쪽

사람은 때로 안고 있는 슬픔과 고통을 음악에 실어 그것의 무게로 제 자신이 낱낱이 흩어지는 것을 막으려 한다. 음악에는 그런 실용적인 기능이 있다. 소설에도 역시 같은 기능이 있다. 마음속 고통이나 슬픔은 개인적이고 고립된 것이긴 하지만 동시에 더욱 깊은 곳에서 누군가와 서로 공유할 수도 있고, 공통의 넓은 풍경 속에 슬며시 끼워넣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소설은 가르쳐준다. -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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