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음식을 좋아하는 그릇에 담아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먹는다. 세상에 이보다 완전한 쾌락이 있을까.-7쪽
밀가루는 나쁘다. 기름은 나쁘다. 설탕은 나쁘다. 혼자서도 충분히 나쁜데 셋이 뭉치면 기절하게 나쁘다. 여자아이들은 그런 걸로 만들어졌다. 설탕과 향료, 그리고 좋은 것들. 은근슬쩍 어버무린 '뭐든 좋은 것'은 기름과 밀가루가 틀림없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나쁘다.-154쪽
또한 몇 년씩 일자리를 구해도 찾을 수 없는 현실을 잊는 데 통밀 식빵이나 오렌지처럼 건강한 음식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튀김이나 아이스크림, 그리고 무엇보다도 설탕을 듬뿍 넣은 차는 그들의 초라한 삶에서 유일하게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것이었다. -200쪽
죽을 때까지 양배추 수프만 먹고 살 수 있다면, 내일 일이야 알 바 아니다. 날씬한 오늘을 살고 싶은 많은 여자들이 솥을 걸고 주걱을 휘두른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6리터 냄비에 한가득 끓인 수프는 생각보다 맛있었다. 물론 배도 불렀다. 하지만 허전했다. 생생하고 구체적인 식욕을 흐릿하고 추상적인 허전함이 잡아먹었다. 어떤 욕망도 희미하게 빛이 바랬다. 그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의 기아상태였다. 하루 종일 먹을 것만 생각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먹는 것까지 포함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일상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가 되었다. 일을 못한 건 물론이고, 놀지도 쉬지도 못했다. 멍하니 잠만 잤다. 어쩌면 고통을 잊기 위한 몸의 반사작용이었을 것이다. 나는 지극히 사소한 것에 기뻐하고, 또 슬퍼했다. 또한 극심한 감정기복 와중에 끊임없아. 자책감에 시달렸다. 아무리 야채지만 이렇게 많이 먹어도 될까. 이러고도 살을 뺄 수 있을까. 운동도 못 하고 외출도 안하며, 수프에 들어가는 채소들의 칼로리만 연신 검색했다. 우울함은 다이어트 종료 반나절을 남기고 극에 달했다. -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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