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곧 치유의 감정입니다. 브래드쇼는 만일 슬퍼하는 것을 허락받는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치유된다고 말합니다. 고통의 분출과 표현은 그것이 분노의 외침이든, 장맛비 같은 통곡이든 부끄러운 것도 나약함의 표시도 아닙니다. 그것은 곧 내가 살아나기 위한 절실한 무엇입니다. 눈물이 죽은 이를 살려내거나 과거를 되돌려놓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과거와 함께 죽어 있는, 살아남았으나 죽은 자처럼 굳은 덩어리가 되어 있는 나를 녹여내는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살아날지 모릅니다. -68쪽
엘리스 미럴나 페니베이커도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상처가 아니라 이를 표현할 수 없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고통을 당하면 그 고통을 확인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절망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나만 홀로 당하는 고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받았다고 해도 곁에서 누군가가 그 상한 마음을 공감해주고, 그 감정을 풀어나가도록 도와주면 수치심에 묶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79쪽
칼 융은 "고독은 내 곁에 아무도 없을 때가 아니라 자신에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의사소통할 수 없을 때 온다"고 말합낟.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말너머 말없이 침묵하는 말에도 귀 기울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163쪽
우리는 저마다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어너가를 향한 "견딜 길 없는 그리움"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의 끝에 남은 상처를 가슴 한쪽에 감추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178쪽
칭찬은 인내심과 끈기, 그리고 실패했을 때도 이를 이겨내는 노력에 대해 해주어야 합니다. 결과에 집중된, 성취를 강요하기 위한 칭찬은 공허한 메아리이자 부담일 뿐입니다.-213-214쪽
사실 '물이 반밖에 안 남았다''물이 반이나 남았다'라는 생각은 우리의 긍정과 부정의 사고습관 이전에 각자의 욕구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전에 국물이 많은 음식을 먹은 사람이라면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짠 음식을 먹었거나 갈증이 나는 상태라면 물이 반밖에 없다고 느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각자 다르게 받아들이는 욕구의 차이를 인정하면 우리의 관점에 큰 변화가 찾아옵니다. 그것은 나를 비난하기에 앞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할 뿐만 아니라, 나의 욕구를 깨닫고 그것을 해결하도록 도와줍니다. '부정적인 사고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니 긍정적 사고로 바꿔라'는 획일적인 강요를 받아들이기 전에 내가 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지, 나의 진정한 욕구는(혹은 욕구불만은) 무엇인지를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은 우리를 문제해결로 나아가게 합니다. 사건의 본질을 본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239쪽
살아 있는 건 멋진 거야! 포도주처럼 멋진 거야! 살아 있는 건 멋진 거야! -랭스턴 휴즈, [살아 있는 건 멋진 거야!]중에서-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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