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사랑하는 데 이유가 있어?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거지"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정확한 답일 테지만, 가장 공허한 답이기도 하다. 사랑은 배우는 것이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 우리는 언제나 서투르고, 그래서 사랑을 하면서 수많은 상처를 주고받곤 한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 배우고 더 성숙해지는 건 물론이다. -49쪽
행복한 사랑은 신뢰를 바탕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니 사랑이 무르익기 전, 상대를 완전히 신뢰하기 힘들 때에는 사랑의 마음도 자주 불안함에 흔들리게 된다. 그가 정말로 나를 사랑할까. 사랑한다면 얼마나 사랑할까. 혹시 나를 귀찮게 여기게 되지는 않을까. 이렇게 사랑을 주면 나중에 나를 우습게 보고 막 대하는 거 아닐까....... 끝없는 의심과 확신 없는 물음 속에 정신은 피폐해져만 간다. -88쪽
이별 후 우리에게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충분히 슬퍼하고 지나온 과거를 살펴본 후, 그 관계에서 무엇을 잃고 얻었는지 점검하고, 마침내 홀로 상처를 딛고 일어설 때까지의 시간 말이다. 그 전에 다른 관계를 맺는다면 우리가 이별의 고통을 통해 배울 수 있을 귀중한 경험들을 놓쳐버리고 말 것이다. -161쪽
부부는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내며 여러 자기 문제에 부딪치고, 즐거운 날들과 슬픈 날들을 같이 지나오게 된다. 부부가 싸우고 화해하고, 또 밀쳐내고 끌어안는 동안 쌓이는 '정'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의 무게를 지닌다. 아무리 밉고 싫어도 내 남편, 내 아내는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십 년 이상 살아온 부부의 길고 깊은 역사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204쪽
많은 여자들이 한 남자와 오랜 세월을 보내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건 역시 열정이 식는 것, 그래서 그와 내가 예전처럼 타오르는 눈빛으로 서로를 보지 않게 되는 것, 그리고 이 좋은 젊은 날을 한 사람에게만 바치게 되는 것, 결국 다시는 가슴 뛰는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어떤 연인이든 수십 년이 지나도 늘 처음 같은 설렘 속에 사랑할 수는 없는 법이고, 우리의 젊음은 순식간에 지나가게 마련이니까.-258-259쪽
네 손을 잡으려는데 손이 없다면? 네 몸을 안으려는데 몸이 없다면? 네 밑을 내게 주는데 밑이 없다면? 언젠가 그런 생각이 들어. 늙어가는 몸을 찬찬히 들여다본 적이 있다. 입가는 내려앉고 손거죽 쭈그려들고 여윈 팔 몹시 후들거리고, 그리하여 이제 내가 욕망하는 사람의 욕망이 될 수 없다는 것. 이제는 내가 욕망하는 누구도 나를 제 욕망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리라는 것, 마주 오던 나를 보도 골목으로 피해 가던 중학교 때 친구처럼, 지금은 묵묵히 생이 나를 피해 가는 시절. -이성복 [지금은 생이 나를 피해 가는 시절],{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중에서 -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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