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콘 - 진중권의 철학 매뉴얼
진중권 지음 / 씨네21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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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피지션(pataphysician)은 자신이 늘어놓는 얘기가 조크라는 것을 안다. 파타피직스(pataphysics)는 논리 '이하'의 현상이 아니라, 논리 '이상'의 현상이다. 파타피지션들은 논리의 위에 서서 논리를 가지고 논다. -31쪽

유학시절에 만난 독일의 한 여학생은 내가 기독교인이면서 무신론자라는 사실에 혼란스러워 했다. "종교적으로는 기독교인이고, 철학적으로는 무신론자이고, 윤리적으로는 쾌락주의자이고, 논리적으로는 금욕주의자이고,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자이고,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자이고, 문화적으로는 무정부주의자이다." 그는 그 모든 규정들이 어떻게 머릿속에서 하나가 될 수 있냐고 물었다. 하지만 왜 정체성을 왜 패키지로 가져야 하는가. -87쪽

싱크레티즘(syncretism)은 먼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되 행동의 일치를 추구하는 것. 그것이 싱크레티즘의 요체다. 같은 일을 하기 위해 굳이 가치관을 일치시킬 필요는 없다. 생각이 달라도 얼마든지 같은 일을 할 수가 있다. 진정한 의미의 싱크레티즘은 공동의 대의라는 명분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99쪽

참여의 거부는 먹고 살기 바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열심히 실천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not'이 'prefer'의 앞에 오느냐, 뒤에 오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마음가짐의 변화뿐인데, 그게 그토록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구별인지 모르겠다. I would prefer not to.-148쪽

급진적인 것은 사태의 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급진적으로 되려면 무엇보다 제 뿌리로 돌아가, 제 신념의 토대를 힘껏 흔들어보아야 한다. 오늘날 사회를 바꾸는 데에 필요한 것은 확신에 가득 찬 혁명가가 아니라, 회의로 번민하는 아이러니스트다. -159쪽

산업화한 도시 속에서 모든 것은 기계적으로 반복된다. 이렇게 무의미한 삶이 기계적으로 반복된다는 느낌. 이것이 현대인이 느끼는 지루함의 요체가 아닐까?-207쪽

하지만 진정으로 영웅적인 것은 이 절대적 지루함을 분과 초 단위까지 충만하게 견뎌내는 인내심에 있지 않을까?-210쪽

대개 사람들이 중심을 지향하기에 중심에서 벗어나 사는 일은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에르곤(ergon, 작품)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은 파레르곤(parergon, 액자). 그리하여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보려면, 때로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 서 있어야 한다. -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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