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페미니즘이라는 것, "내가 여성이라는 것은 내가 정한다. 다른 누구에게 결정 받고 싶지 않다"고 하는 약자의 자기 정의권의 요구가 아니었을까요? "추녀는 여자도 아니다"에서 시작되어 "나긋나긋하지 않으면 여자가 아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여자답지 않다", "논리적인 여자는 여자가 아니다" 심지어 "남자에게 선택되지 않은 당신은 여자가 아니다"까지. 요약하면 '여성다움'의 정의는 남성의 수중에 있었던 것입니다. 뻔뻔하게도 이 정도로 남성들 자신에게 유리한 '여성다움'을 불어 넣고 있었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니까 "남자에게 선택되건 안 되건, 나는 나"라고 페미니스트는 주장한 것이고 이제 "타인에게 존재를 증명 받지 않아도, 나는 나"로 나아가기까지 한 걸음 남은 것이지요. -32-33쪽
바이링궐이라는 것. 두 개의 언어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리얼리티를 보여줍니다. 그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면서 스스로 매체가 되는 '번역'은 타인의 언어를 훔치면서 자기의 언어로 바꿔 놓는 배신 행위입니다. -61쪽
한국 사회를 바꾸어 낼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은 지금의 386세대들이 가장 고심해야 할 과제는 바로 상대주의적 사고력과 심미적 감수성을 길러가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11쪽
나는 비록 교회를 가지 않은 지 오래지만, 현세적 질서와 단절을 해내는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는 면에서 우리 선대가 해낸 개종의 결단에 대해 늘 고맙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보이는 세상 너머에 또 다른 세상이 있으며, 역사는 이미 써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써가는 것임을 어릴 적부터 느끼게 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 말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을 심어주었다는 점에서도요. 당신도 가끔 기도를 하나요?-123쪽
역시 페미니즘은 국가 밑에 있고 그 국가가 다른 국가와 다른 것은 단지 차이가 아니라 국가와 국가의 역학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차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137쪽
국가보다 내가 소중하다. 내게는 이것이 페미니즘의 '기본의 기(基)'이라고 생각됩니다. 국가보다, 회사보다, 가족보다 내가 소중하다. 개인 목표에 우월하는 어떤 집단 목표도 없다. 그렇게 잘라 말하고 싶습니다. -141쪽
내가 그간의 편지에서 '시차'를 강조한 것은 실은 문화적 상대주의적 시각을 무시해서라기보다 진화론적 시각을 강조해서입니다. 물론 이 때의 진화는 '진보'를 말하지 않으며, 또한 '단선진화'를 뜻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강조한 것은 복합적인 사회 진화의 양상, 특히 물적 조건에 기반을 둔 사회 분석의 차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다수가 대학에 가는 것이 가능해진 경제적 조건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차이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집안에 한 대의 텔레비전만 있는 경제 수준에서는 온 가족 성원들이 한데 모여서 드라마를 보게 되고, 그 때 그들은 스도리를 중시하는 영상읽기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각각 텔레비전을 갖게 된 상황에서 개별화된 관객은 스토리나 계몽주의적 메시지가 아니라 패션과 풍경과 음악 등 디테일을 '소비'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가 '시차'라는 개념으로 강조하려고 한 것은 바로 경제적 조건을 충분히 고려한 이러한 경제. 정치. 문화간의 상동성을 중시하자는 뜻이었지요. -171-172쪽
그래서 교육의 핵심음 근대를 다시 보는 성찰적 작업이어야 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성찰'이란 단순한 반성을 말하지 않습니다. 길이 없음을 인정하고 새 길을 내기 위해 혼란의 여정으로 기꺼이 들어가는 것을 말하지요. 단절과 '거리두기'를 하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조차도 남의 것인 양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나는 하고 싶은데 왜 몸이 움직이지 않나"라는 말은 동기상의 위기에 시달리는 요즘 아이들이 가장 자주 묻는 질문이지요. 후기 근대적 상황에서의 학교는 내외부에 존재하는 불안과 위협을 보지 않게 하는 보호막이 아니라 그것들을 보여주면서 스스로 다스려가는 명상과 성찰 가능한 '경험'이 필요한 것이지요. 또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음악이 필요하고 연극이 필요하며 디자인하는 능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228쪽
당신은 미래에 대한 비전 속에서, 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작은 커뮤니티를 상상하고 있었지요. 물론 지금과 같은 학교가 아니라 아이들의 자유 공간(free space)과 같은 또 하나의 학교말이지요. 당신은 '양육'을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그리고 있고, 나는 '보살핌(care)이라고 하는 유대를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탄생과 죽음을 자신의 의사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처음과 마지막에는 어떻게든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의존상태를 경험합니다. 타인에게 의지하는 것이 굴욕이 아니라 권리이고, 타인을 돌보는 것이 보이지 않는 헌신이 아니라 보상받는 노동이라는 것. 개호보험이 달성한 것은, 그런 사고방식의 전환입니다. -243쪽
(참고) 일본에서는 2000년에 개호보험이 시행됨. *개호 : 간호와 보살핌을 겸하여 노인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로서 입욕, 영양관리, 재활 치료, 레크리에이션 등이 포함된다. 최근 사회복지 서비스는 탈 시설화와 통합화를 지향하고 있는데, 그러한 흐름 속에서 대상자들이 자기의 지역 사회 안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따라서 대상자의 건강 문제뿐만 아니라 신체적 장애, 정서적, 사회적, 경제적 문제 등 여러가지 수요를 통합적으로 충족시키는데 개호 복지 서비스의 핵심이 있다.
*개인보험 : 개호의 사회화를 위하여 2000년부터 실시된 사회보험제도. 40세 이상의 국민은 모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65세 이상의 피보험자가 그 혜택을 볼 수 있는데, 요개호도(要介護度) 인정에 따라 한도액 내의 개호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방자치단체가 보험자가 되어 개호보험료와 세금 그리고 이용자가 1할 부담하는 재원으로 운용된다. -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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