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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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은 베트남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이 점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48쪽

프랑스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가 무의미해졌다.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베트남의 그 풍경들 가운데, 다스려지지 않은 대자연 앞에서 카트린 수녀는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그녀의 기도는 곧바로 핵심을 향했고 이제 유혹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세계는 속이 빈 조가비였다. -49-50쪽

"각각의 존재는 하느님의 집이지요."-71쪽

농부들은 복음서를 경청했다. 그리고 여전히 계속하여 그들의 옛 신들을 믿었다. 베트남은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은 채 다 간직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영원 속에서 한데 뒤섞였다. 존재들은 눈 위를 불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지나갔다. -97쪽

겨울은 여러 달 동안 계속되었다. 5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해가 났다. 낮게 떠 있던 구름은 걷혔다. 하늘이 푸르러지면서 대지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산들이 더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더위는 사이공에서보다는 덜 지루했다. 미풍이 불어 공기가 맑게 씻기었다. 안남에는 절대로 회오리바람이 불어오는 법이 없었다. 회오리는 산 위에서 허물어지고 소란스럽게 바람으로 풀려서 고개와 골짜기들로 몰려들어갔다. 그럴 때면 하늘이 어두워졌다.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가눌 수 없었다. -112쪽

만물 속에 신이 있었다. 저마다의 존재는 비록 생명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하나씩의 영혼을 지니고 있었다. 이 베트남 사람들은 얌전하고 조용했다. 참을성 있는 그들은 표지 하나하나 속에 깃든 우주를 섬겼다. 달이나 바람처럼 비가 그들에게 말을 했다. 선교사들은 그들에게 머나먼 전설들이 살아 숨쉬는 한 권의 책을 소개했다. 전설들은 재미있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의 신들은 믿기 어려운 것이면서도 마음에서 가까웠다. 신들은 잎사귀 하나하나를 떨게 했다. 여러 가지 표지들이 그 베일을 벗고 나타나는 어떤 여름밤이면 마을은 행복한 신음 소리로 수런거렸다. 남자와 여자가 우주에 하나되는 것이었다. -120-121쪽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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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떠난 사람들의 수가 죽음으로 인하여 줄어드는 것과 동시에 지닌 물건들이나 몸에 걸친 옷가지. 겉치레. 의식 따위들도 하나씩 제거되고 벗겨진다. 아르망드 수녀가 콜레라로 죽자 배를 한 척 불태워버리는 것이나 도미니크 수사가 "면도"를 한다든가 "헤엄을 치는" 것은 무거운 껍질을 벗어버리고 가벼움과 자유로움의 본질로 다가가는 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일행 중 가장 '무거운' 존재는 "구식 보병총으로 무장한 약 백 명 가까운 병력"과 "주철대포"였다. 그들의 집단적인 죽음과 더불어 여행길은 점점 더 핵심에 가까워진다. 이제 성직자들만 남은 것이다. 과거의 추억이 지닌 무게도 떨어져나간다....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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