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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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은 우리의 삶의 이야기를 써 나간다. 책들이 우리 서가에(또 창틀에, 소파 밑에, 냉장고 위에)쌓이면서 그 한권 한권이 우리 삶의 이야기의 한 장(章)을 구성하게 된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15쪽

이후 30년 동안 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 하나가 아니듯이 책을 사랑하는 방법도 하나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64쪽

이와 비교할 때 헌사를 달고도 헌책방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은 얼마나 우울한가. 그 각각이 배반당한 우정의 기록이라니. 배반자들은 자신의 배반이 영원히 비밀로 남을 것이라고 믿었을까? 그랬다면 안타깝게도 착각을 한 것이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배반을 목격하게 되는데, 가끔은 헌사를 쓴 사람이 목격자가 되기도 한다. 쇼는 헌책방에서 "_____에게 존경하는 마음으로 조지 버나드 쇼가"라는 헌사가 적힌 자신의 책을 발견한 적이 있다. 그는 그 책을 사서 그 사람에게 다시 보내면서 헌사에 한 줄을 보탰다. "새삼 존경하는 마음으로, 조지 버나드 쇼가."-91쪽

우리 독서광들에게 현장 독서가 현장과 아무 상관없는 곳에서 읽는 것보다 훨씬 더 자극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마음의 눈이 문자로 모든 만족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책장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어한다. -99쪽

요즘에 나는 컴퓨터를 쓴다. 사실 손으로 깎은 까마귀 깃털을 사용해야 마땅하지만, 이 에세이 역시 컴퓨터로 쓰고 있다. 많은 글쟁이들이 알고 있듯이, 컴퓨터는 글을 고치는 면에서는 다른 것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배치를 바꾸는 것이 너무 쉽기 때문에 이전 같으면 구식의 자르고 붙이는 노고와 폭력으로 인해 내 상상력으로부터 차단되어 보이지 않았을 구조적 결함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삭제 단추는 지저분한 원고를 협오하는 작가들에게 큰 은총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 때문에 워드프로세서는 모든 글쓰기 수단 가운데 가장 영원하지 못한 것이 되고 말았다. 옛날 같으면 그어 놓은 줄 밑에 그대로 남아 있을 말들이 지금은 보통 망각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린다.-133-134쪽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궁지에 몰리면 워터 피크 안내문이라도 읽을 것이다. 소도시의 모텔방에서 홀로 지낸 수많은 밤에는 전화번호부에서 위로를 받기도 했다.

*워트 피크 : 치과에서 제트 수류로 치아 사이를 세척하는 기계의 상표명-157쪽

즉 모든 독서는 연기라는 것. 모든 부모가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로 아이를 재울 때 하는 일을 디킨스는 단지 연극적인 극단으로 몰고갔을 뿐이다. 소리를 내지 않고 읽을 때는 작가만 연기를 한다. 소리를 내서 읽을 때는 연기가 협조적으로 이루어진다. 한 파트너는 대사를 제공하고, 다른 파트너는 리듬을 제공한다. 무대는 필요없다. 리허설도, 심지어 관객도 필요없다. 하이네는 어렸을 때 뒤셀도르프의 궁정 정원에서 나무와 꽃들을 향해 [돈키호테]를 읽어주었다. 램은 설사 듣는 사람이 없다 해도 셰익스피어와 밀턴을 소리내지 않고 읽는 것은 범죄 행위라고 믿었다. 나는 대학에서 그리스어를 배울 때 두 주가 지나자 알파벳을 다 외운 것이 너무 기뻐, 내 기숙사 방을 왔다갔다 하며 가구들한테 [오디세이]의 첫 두행을 수백 번 되풀이해 낭독해 주었다. -181-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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