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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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철학으로 대표되는 인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말이 많다. 인문학은 주어진 현실과 인간의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꿈꾸려는 학문이다. 당연히 인문학의 위기는 우리 삶의 위기와 동의어라고 하겠다.-69쪽

아내는 남편에 대해, 혹은 남편은 아내에 대해 부단히 자신을 새롭게 가꾸어야만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이 상대방에 대해 낯섦, 혹은 사건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상대방은 자신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나 긴장감도 가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경우 대가가 필요하다. 더 이상 친숙한 상태로 상대방을 만날 수 없을 것이고, 당연히 정서적 안정도 심하게 훼손될 것이다. 그렇지만 [가구]라는 시에서 도종환이 말했던 가구와 같은 관계를 벗어나려면, 이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본래 가구들끼리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아내는 방에 놓여 있고/ 나는 내 자리에서 내 그림자와 함께/ 육중하게 어두워지고 있을 뿐이다." 무서운 일 아닌가? 없을 때는 찾게 되고 있을 때는 서로 무관심한 관계, 즉 가구와 같은 관계라면 말이다.-85-86쪽

비트겐슈타인은 단순한 학문적 관심에서 언어를 숙고했던 철학자는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언어는 윤리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다. 특히 그가 혐오했던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을 타인에게 함부로 말하는 인간의 허영이나 과시욕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타인의 속내레 대해 당사자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듯이 함부로 이야기하고 있는가?-99쪽

공자에게 예절은 중요한 것이다. 그는 꿈에서나마 예를 만들었던 주공을 만나기를 기대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에게 있어 타인에 대한 섬세한 배려가 없다면, 예절은 아무도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바로 이런 통찰 때문에 공자는 예절의 맹목적인 추종자가 아니라, 최초의 동양 철학자로 남을 수 있었다. -143쪽

타자와 차이를 포용하는 여성적 경험이야말고 구체적인 현실의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타자와 차이가 우글거리는 곳이 바로 현실이자 구체성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체험을 표현하는 데 있어, 여성은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남성의 담화를 통해서만 표현하도록 강제되어 있는 문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성의 담화가 논리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삶의 중요한 대목은 대부분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애매한 것 아닐까?-187-188쪽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무의식적 정서, 즉 상대방이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 상대방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읽을 수 있는 타자에 대한 감수성이다. 오직 그럴 때에만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따. 표면적으로 상대방은 나의 이야기를 의식적으로 옳다고 인정할 수는 있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타당한 주장, 즉 논리적으로 옳은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상대방을 실제로 움직이도록 할 수 없는 이유는, 나의 이야기가 그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비판적이고 논리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은 상대방의 역린을 읽을 수 있는 수사학적 감수성이 없다면 빛을 발할 수 없는 법이다.

*역린逆鱗: 용의 목에 있는 거꾸로 된 비늘-208쪽

자신의 삶이 예기치 않은 마주침에 의해 요동친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회피하는 인간을 깨우려는 것, 그래서 그들을 삶의 진실에 이르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왕충이 하려는 것이었다. 왕충의 시선은 몸서리쳐질 정도로 싸늘하다.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는 마주침도 있을 수 있고, 아니면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마주침도 있을 수 있다.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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