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고 기억력이 희미해져 어제 일도 까먹는다 해도 잊지 못할 옛날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있다. 엄마한테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어린 시절은 나의 일생 중 완벽하게 행복한 시절이었다. 무서운 얘기도 많았지만 결국은 착한 사람이 이기고 못된 인간은 멸하거나 개과천선하게 돼 있었고, 동물이나 식물하고도 교감할 수 있는 조화롭고 아름다운 세계였다. 그래서 엄마의 옛날이야기는 엄마처럼 안전했지만 언젠가는 벗어나야 할, 아니 내쫓겨야 할 세계이기도 했다. -185쪽
실종된 신경숙의 엄마를 줄곧 우리 엄마하고 동일시하고 읽다가 그 엄마가 이 세상 어디선가 마지막 정신을 놓기 전에 남긴 독백, "내 새끼. 엄마가 양팔을 벌리네. (중략) 나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네. (중략)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에 이르러 마침내 우리 엄마가 아닌 나하고 하나가 된다. 나야말로 엄마의 도움 없이는 죽지도 못할 것 같은 나약하고 의존적인 인간이니까.-195-1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