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죽을 운명임을 부정하는 이유는 뻔하다. 죽음을 예상하는 것은 끔찍하니까! 우리는 단지 잠시만 이 세상에 존재하며, 죽으면 영원히 사라진다는 사실을 대면하는 고통은 극도의 불안을 야기한다. 이러한데, 즉 시계 초침이 그리도 크게 째깍거리는데, 어찌 삶을 즐길 수 있겠는가? 베커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미망(delusion, 망상, 착각) 그야말로 대미망(大迷妄, Big Delusion)이다. 이것은 인간의 원초적 동인-성적 동인보다 더 원초적이라고 배커는 말한다-이며, 우리를 불멸한다고 믿게 만드는 비이성적 신념 구조인 '불멸 시스템'을 태동시킨다. 무한한 미래로 이어지며 어쨌든 우리도 그 일부가 되는 부족, 인종, 또는 국가와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는 그 흔한 전략도 있다. 또한 예술을 통한 불멸 시스템도 있다. 이 시스템 속에서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남으리라 상상하며, 자신도 역시 그러하리라고 기대한다. -24-25쪽
칼 구스타프에 의하면 종교는 "마음으로부터" 생기는 상징들을 제공함으로써 정신을 대변한다. 이러한 상징들이 계시력을 갖는 건 이들이 꿈, 문화적 신화, 그리고 종교들을 통해서만 우리의 의식에 접근할 수 있는 본능적 지혜의 창고, 즉 깊은 무의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 의식이 이 깊은 영혼과 연락이 끊길 때-즉 소원하게 될 때-바로 우리는 그 모든 것의 근원적인 무의미함으로 인해 끔찍하게 우울해지는 신경 이상 증세를 보이게 된다. -37쪽
"......키르케고르에 의하면, 자네의 만사 관련 모든 불안은 그 심리 상담실 소파에서 쏟아 놓는 불평보다 훨씬 먼저 생긴 것으로, 자네가 언젠가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시작된 거라네. 그리고 아마도 자네가 엄마, 동생 스키피, 그리고 아빠에 대한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은 자네의 진짜 문제, 즉 그 큰 죽음이라는 문제로부터 자신의 주의를 돌리기 위한 방편일 뿐이야."-44쪽
마이클 프레인은 또한 '지금'을 이렇게 말한다. "아! 지금! 그 기이한 시간. 모든 시간 중에서 가장 기이한 시간. 항상 있는 그 시간......우리가 '지금'의 '금'자에 다다른 시간이면, '지'는 이미 고릿적 얘기가 돼 버린다."-100-101쪽
흥미롭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기 전의 영원한 삶의 가능성에는 별 관심이 없다. 아마도 그때 영원한 삶이 있었다 해도 그걸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바로 이 점은 '만약 영혼이 불멸이라면 우리 사후의 의식이란 어떤 것일까'라는 그 오랜 질문에 대해 새로운 조망을 하게 한다. 우리는 지상에서의 의식을 기억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불멸에 대해 떠드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임Me-ness'이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면, 지금이 됐든 혹은 그 때가 됐든 간에 상관할 바 뭐란 말인가? 또는 달리 말하자면, 어느 쪽의 '나'가 됐든 간에 왜 우리가 거기에 상관해야 하는가?-128쪽
세네카는 "현명한 사람은 그가 살 수 있는 한 오래가 아니라 살아야 할 정도로만 오래 살 것이다.(......) 그는 항상 자신의 삶의 질에 관해 생각하지, 그 길이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마음의 평온을 해하는 많은 일들이 생기면, 그는 곧 자신을 놓아 버린다"고 썼다.-197쪽
윌리엄스는 좋은 삶이란 반복과 따분함이 불가피하게 자리 잡기 전에 끝나는 삶이라고 말한다. -226쪽
우리는 우리의 경험들을 서로 연결하고 그것들에 일관성과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자아를 경험한다. 우리의 자아는 우리의 경험들에 구조를 부여하는 '통찰점'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시간을 '살아 있는 현재'로 경험한다. 하나의 경험으로써의 시간이란 개별적 순간들로 이루어지는 그저 직선이 아니며 또한 궤도를 달리는 현시점도 아니다. 우리의 현재는 우리의 과거 기억들과 미래의 기대들이 항상 밀접하게 맺어저 만들어진다. 우리는 지속되는 시간을 통해 우리의 자아를 경험하는 것이다. -238-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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