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 그리고 책과 함께 만난 그림들……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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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감 속에서 쫓기듯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꼭 가면을 쓰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 가면을 벗고 "완성의 다음에 오는 저 느긋함과 덤비지 않는 의젓한 얼굴'을 가지기를 애타게 바라는 한 젊은이의 모습을.-75-76쪽

조직으로부터 주어지는 수많은 지시들에 항명抗命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가만히 종이 위에 'I would prefer not to'라고 써보곤 했다.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과업이 주어졌을 때, 쓰기 싫은 기사를 써야만 할 때, 기사를 쓰고 싶은데도 도무지 기삿거리가 없을 때, 모두들 꺼리는 보직을 맡게 되었을 때……. 그 문장을 휘갈기고 있다 보면, 비밀의 주문이라도 외우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I would perfer not to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224쪽

희망이 무서운 것은 그것이 욕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욕망은 현실적이고 비루하지만 희망은 비현실적이고 정화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무언가를 갈구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그 둘은 같은 것이다. 이루어지지 못한 욕망은 절망감을 낳고, 그러한 절망감은 증오와 다툼, 고통을 낳는다. -246쪽

"길에는 언제나 모퉁이가 있기 마련"이라는 구절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을 주는 것만 같아서 좋았다.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종종 '나는 지금 구부러진 길모퉁이를 지나고 있는 거야, 앤처럼 말이야'하고 생각했다.
내게 '빨강머리 앤'은 고통과 절망을 상상력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 스승인 동시에, 소녀다운 꿈과 욕망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였다.-292-293쪽

"아까 것보다 훨씬 못해."
그레고리는 안타까워했지만, 성모 그림은 스스로 어울리는 것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남색 면 헝겊은 지네트 부인이 준 리본처럼 아름다운 감청색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칙칙한 천이 더 보기 좋았다. 성모 마리아는 자신이 부엌에 있게 될 줄 알기라도 하는 듯이 소박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내가 계획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영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 '아, 이일이 결과적으로는 내게 더 좋은 일이 될 거야'라고 마음을 다독이는 버릇을 가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어린 시절 이 책의 위 구절에서 입은 영향 때문이다. 대학에 떨어졌을 때, 연애에 실패했을 때, 회사에서 원하는 부서에 보내주지 않을 때, 나는 항상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이 모든 것이 "스스로 어울리는 것을 찾아가는" 그레고리의 성모 그림처럼 되게 해달라고.-3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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