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가장 진심을 담으면 쓰는 사람은 쓰면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소중하고 중요한 어떤 것을 자유롭게 쓰고 있다면 글쓰기 작업에 반드시 수반되는 물리적 가혹함을 전혀 낼 수 없다. 간절히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가장 정직하게 써 나갈 때 나는 보다 진정한 나 자신이 되어간다. (17-18쪽)
진짜로 간절하게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내게 재능이 있을까?‘라고 묻지도 않을 것이다. 정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재능이 밖으로 흘러넘쳤을 테고, 대부분 고만고만한 우리에게 재능은 있고 없고의 문제라기보다, 여러 가지 행동과 실천의 ‘결과‘로서 어쩌면 중간부터 드러나는 무엇일지도 모른다.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저 너무 쓰고 싶으니까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떤 목표 지점의 성취나 인정을 바라기보다 글쓰기 작업 자체를 일단 진심으로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60-61쪽)
수정을 좀 더 편하게 하는 방법은 없다. 수정이 어려운 것은 내가 쓴 것을 스스로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정은 나의 부족함을 정면으로 보는 일이다. 거기에는 반드시 내가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과 그에 따른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138쪽)
내게도 작가나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있다. 나니 심한 편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할 수 없다면 그것은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만약 그 작품이 어떤 절대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이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작가 자신이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176쪽)
현실에서는 책만 쓰며 먹고살수 없다. 대체 언제까지 청탁 원고나 강연, 글쓰기 수업 같은 숱한 ‘다른 일들‘을 해치우면서 동시에 시간을 쪼개 쓰고 싶은 글을 써야 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장담도 못한다. 책만 써서 먹고살 수 있게 되었다 쳐도 그 감사한 상황이 지속될지는 미지수이다. 전망은 대개 비관적이다. 먹고 살기 위해 이런저런 일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쳐내야 하는 현실을 겪다 보면 문학을 사랑하기엔 때로는 너무나 지쳐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204쪽)
하나의 특성을 두고 누구는 좋아하고 누구는 싫어한다. 이거싱 바로 이토록 다채로운 개성의 작가들이 공존하며 저마다의 독자들을 가질 수 있는 이유다. (중략) 그러나 그책을 사지 않았다고 해서 독자가 그대로 바로 빠져나간 것도 아니다. 그들은 사라져 있다가 다음 책의 소재가 마음에 들면 다시 독자로 돌아온다. (140-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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