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완벽한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인간이 그 완벽한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가난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창조했다. (중략) 성서가 끈질기게 말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넉넉함‘이다. 모든 이의 필요를 채우기에는 넉넉하지만, 모든 이의 탐욕을 채우기에는 넉넉하지 않다. (10쪽)
(왕상 21:19) 예언자가 사용한 두 동사는 서로 잘 들어맞는다. ‘죽이다‘와 ‘차지하다‘, 차지해야 한다면 죽여라! ‘탈취‘에 관한 본문 전승이 교회와 회당에 전해 내려왔고, 지금은 교회에 맡겨져 있다. 교회는 경제 문제를 회피하면서 결국 이런 본문 전승을 체계적으로 무시해 왔으며, 이는 가시 교회가 그런 문제에 침묵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대부분의 경우를 보면, 우리는 교회에서 힘 있는 자들이 약한 자들을 어떻게 탈취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48쪽)
사유화 그리고 공동선을 이루어 할 영역에 부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발생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격차는, 이스라엘 예언자 전승의 주요 주제이며, 특히 고발과 판결이 등장하는 ‘소송‘이라는 수사적 도구를 통해 표현된다. (중략) 호세아 4장 1-3절이 제시하는 예언자의 ‘소송‘ 모델은 두드러지게 간결하고 명쾌하다. (중략) 예언자는 사람들에게 성실함과 연대(solidarity)가 없음을 한탄하다. (96-97쪽)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은 안에 있을 사람과 밖으로 몰아낼 사람, 삶에서 가치 있고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자와 그럴 자격이 없는 자를 가려내고자 ‘정결함과 부정함‘(clean and unclean)에 관한 규칙과 범주를 만들어냈다. (중략) 배제와 반대로 이스라엘의 고대 언약과 예수 운동이 강조한 것은 포용이다. 즉 예수는 나병 환자, 여성, 외인, 이방인은 물론, ‘부정한‘ 자와 관련된 모든 사회 장벽을 무너뜨리셨다. (129-131쪽)
(막 10:17-31) 그는 가진 것이 많았다. 권력과 풍요와 안전의 정점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처럼 그도 가진 것이 많았다. 이 사람은, 복음이 제시하는 대안 사회, 시내에서 이미 시작된 대안 사회가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세상이 가장 좋게 여기는 꿈과 모순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는 어려운 선택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그 모순을 감추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 예수는 철저히 상반되는 이것 아니면 저것을 이 사람 앞에 제시하신다. (중략) 예수가 시작하신 새로운 세상도 이웃 사랑에 기초한 참여와 연대와 변화를 꿈꾸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144-145쪽)
탐냄은 이웃의 본분을 어기는 것이다, 따라서 성서는 부적절한 욕망의 감춰진 힘과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욕망이 실제로 세상에서 드러내는 탐욕을 선뜻 함께 연결한다. 데즈먼드는 가난을 가리켜, 힘과 특권을 가진 자들이 마땅히 전체 공동체에 속해야 할 자원을 그들 자신을 위해 비죽하는 탐욕의 파괴적 힘을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묘사한다. (17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