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여명 가까운 시인들이 아직도 쓰지 않은 말에 조금 기미氣味를 보았다.

시를 읽는 이유는 앞으로 오는 시간을 미리 알려고, 지나간 시간에 용서를 빌려고, 현재를 다시 보고 또 다시 보면서 살려고 읽는다. 

시인들의 고백을 듣다 보니 그들로 별반 다르지 않구나. 

그러나,

그들은 후회하는 용도로, 고백하는 용도로, 최악을 피하기 위해, 진실이 진짜가 아님에 위안 받으려고, 맑은 눈 하나를 더 찾기 위해, 사랑의 자취를 보내기 위해, 말에 베인 상처를 핥아주기 위해,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 삶의 오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말이 법이 되고 밥이 되는 때로 만들기 위해, 불량 시로 폄하하면서 까지 투명과 불투명의 사이에서도, 자신들을 한번 더 동요하는 마음을 세상으로 내 보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이지만, 우리가 환하게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시라 여겨진다. 

문학동네에게 고맙다.

최근 '더블 빌[Bliss & Jakie)' 현대 발레를 보았다. 숨죽여 보았다. 아주 간단한 무대와 선율, 절제되고 정제된 몸, 따로 또 같지만 다른 춤, 블리스에서는 기쁨과 행복을 느꼈다면, 재키에서는 춤에서 뿜어 나오는 수 많은 아픈 감정이 서로 교차되면서 그냥 빨려 들어갔다. 특히 입은 의상은 무용수들의 춤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여 줘 실력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관통 당하는 느낌이었다. 

시인들이 마지막에 쓴 말과 무용수들의 춤은 그 분야에서 최고였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온전히 드러낸 최고의 정과 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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