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시월의 마지막 날이다. 아들이 결혼함으로써 그 빈자리는 실제로 많이 허전했다. 부모에게 손 빌리지 않고 결혼식을 했고, 손님들은 축하하는 청년들로 가득 차 흐뭇했다. 정부의 전세 자금이나 주택도 당첨되어 그들이 저축한 돈을 (특히 며느리의 저축액을 듣고 깜짝 놀랐다.) 기반으로 십 년 동안 적은 월세로 입주한다 하였지만, 자식들의 저축은 그대로 유지하게 하고 양가 엄마들이 결혼하는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돈으로 전세 집을 마련해 주었다. 매우 매우 고마워했다. 나에게는 딸이 생겼다. 그저 예뻐서 이거 저거 마구 챙겨주고 싶었다. 조만간 집들이 초대에 응해야겠다.
매주 이틀은 봉사 활동으로, 하루는 논어 배우기로 지냈다. 두 달의 봉사 활동은 끝났다. 논어는 진행 중이다.
'작정하고 읽는 자는 늙지 않고 영원히 성장한다'는 비비언 고닉 '끝나지 않은 일'을 읽었다. 그녀는 그 동안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며 다르게 읽기를 통하여 감정과 사유를 통합하여 통합적 자아로 나아가고 있다. 삶을 살아가면서 계속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이다. 특히, 다시 읽은 책을 펼칠 때는 정신분석을 받는 느낌에 빠진다는 말에 지극히 공감한다.
책을 다시 읽을 때마다 내게 다가오는 의식이 상당히 차이가 있음을 이번에 읽은 '성서와 만나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성서를 읽을 때마다 달리 읽히고, 새롭게 발견되는 구절로 놀랄 때가 많다. 성서의 지은이들은 동일한 사건을 각자의 경험에 따라 의미 부여를 달리 했고, 기록의 시점도 차이가 난다. 읽는 이도 또한 그 때의 왜곡과 지나침, 잘못 읽음을 이제 발견할 수 있고 나이에 따라 달리 읽혀진다. 하지만 그 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고 본다. 그 때는 그때의 상황과 마음의 넓이가 그 정도가 최대치였으니까. 그래야 책 읽기를 계속할 수 있다.
황동규 '봄비를 맞다'는 늙음에 맞닿아 있는 자신을 인식하는 시다. '즐거운 편지'가 그립다. 나 또한 눈이 침침해지고(아직도 도수 높은 근시 안경을 끼고 있다), 머리에서 맴도는 단어들이 쌓이고, 입으로 나오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어쩌면 마땅히 대화할 상대가 없어서일까. 최근 대학 때 아쉽게 헤어졌던 후배와 연락이 되어 만났다. 이 나이에, 늙어가면서 만나도 될 사람이 생겼다.
'수유천' 영화에서 묻고 있는 '너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 대답을 들어보면 도달한 사람이 없다. 그래도 지금이 좋다고 말하는 김민희가 돋보인다. 홍상수 영화는 누군가의 일상을 그대로 옮겨 놓아 좋다. 그래서 꼭 보게 된다.
'동경 이야기' 영화에서는 부모님과 우리 남매들이 보였다. 인간은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결혼을 하면 자신만을 생각하게 되는 변화의 과정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대사와 상실을 경험한 시아버지와 혼자가 된 며느리는 서로를 공감한다. 부모는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헌신에 대하여 보상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