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질 수 있는 생각 - 소프트커버 보급판
이수지 지음 / 비룡소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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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언어로 열리는 세계는 말 그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였다. 오로지 이미지의 논리로 진행되는 서사라니...... 그게 매혹되었다. (중략) 시각적인 언어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글을 제외하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끌어다 쓰게 되고, 그러므로 책의 물성과 매체성에 탐닉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말 없는 그림책이 내게 말없이 말 걸어오는 내밀한 세계, 이것은 완전히 다른 언어이며, 이것이 바로 나의 언어구나. 내 안의 이야기를 표현할 목소리를 갖게 되던 순간, 진심으로 기뻤던 것 같다. (74쪽)

삶은 지속해서 선택에 직면하게 만든다. 단풍 물 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고,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모두 가 볼 수는 없다. (118쪽)

글 없는 그림책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읽는 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혼자 눈으로 읽는 책으로, 나누는 행위가 개입되지 않고 매우 개인적인 경험을 하는 책이기도 하다. 글이 있으면 작가의 이야기가 되지만, 글이 없으면 독자의 이야기가 된다. 글이 있으면 글을 따라가게 되지만, 글이 없으면 독자가 자기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132쪽)

놓았다가 다시 돌아오려면 포기해야 할 것이 많고, 이기적인 나로 나아가기 어렵다. 이기적인 나에게 가랑비 젖듯 익숙해지기를 바란다. 나의 무용함과 예술의 무용함을 깊숙이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그게 잘 안 되면, 저겅도 사회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생각하자. 당신의 무용함은 당신에게 유용하며, 세상에도 유용하다. (157쪽)

불안정성, 불안정성! instability, Instability!
엄청나게 떨리지?
너의 약한 부분을 느껴 봐.
새로운 곳이라서 그래.
새로운 곳에선 언제나 불안정함을 느끼지.
불안정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곳은 새로운 곳이 아니야! (248쪽)

책상 위의 푸로젝트는 일이기도, 삶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작업이기도, 구체적인 사람이기도, 그저 마음의 동력이자 꿈이기도 하다. 그림책은 핑계고, 나는 굴러간다. 모두 다 내가 올려놓은 것이지만, 내가 책상 위에 뭘 올려놓았는지 짐짓 궁금해하며 작업실에 가는 길이 즐겁다면, 뭐, 이번 생은 이런 식으로 살아 보는 것으로. (3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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