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방식 - 수전 손택을 회상하며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홍한별 옮김 / 코쿤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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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이 무엇보다도 높이 평가하는 자기 절제, 지적 열정, 철저함을 갖춘 사람이 바로 실버스였다. 수전은 가장 치열한 작가와 예술가들한테만 느끼는 존경심을 실버스에게도 바쳤다. (14쪽)

다른 사람에게 강인한 불굴의 존재로 느껴졌다는 것, 죽기에는 너무 생생한 사람으로 비쳤다는 사실이 수전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잘 말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21쪽)

수전만큼 자연의 아름다움에 무감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수전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도시가 시골보다 우월한 것처럼 예술이 자연보다 우월했다. 어떻게 "20세기의 수도" 맨해튼을 떠나 숲에서 한 달을 보내고 싶을 수가 있나? (40-41쪽)

내가 수전을 만난 일을 내 삶에서 가장 큰 행운으로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나 스스로 존 버거, 발터 베냐민, 에밀 시오랑, 시몬 베유 같은 작가들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수전을 통해 이 작가들을 알 게 된 것은 사실이다. (61쪽)

수전은 평생 학생다운 습관과 분위기를 유지했다. 언제나, 육체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젊은 사람이었다. (중략) 나에게 가장 강하게 남은 수전의 이미지도 미친 듯 몰입하는 학생 같은 모습이었다. 의욕과 경쟁심에 불타 책과 종이에 둘러싸인 채로 밤을 새며 쉴새 없이 일하고 끝없이 담배를 피우고 책을 읽고 메모를 하고 타자기를 두들기는 모습. A플러스 에세이를 반드시 써내고 말겠다는. 반에서 일등을 하겠다는. (76-77쪽)

베케트나 카프카나 시몬 베유처럼 자신이 존경하는 진지함을 가진 사람을 시금석으로 삼았다. 수전은 진지할 뿐 아니라 그들처럼 ‘순수‘하고자 했다. (88쪽)

20쪽짜리 글을 쓰기 위해 책장 한 칸을 다 채울 만큼 많은 책을 읽고, 몇 달을 들여 글을 쓰고 또 고쳐 쓰고, 타자 용지 한 묶음을 다 털어 쓰고야 비로소 완성했다고 하는 것. 진지한 작가에게는 이게 보통이었다. (중략)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혹은 특정한 청중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는 일도 아니다. 문학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수전은 말했다. (96쪽)

"너 자신을 희생자로 생각하고픈 욕구를 물리쳐야 해." (수전은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을 참지 못했다. 자신을 지키는 보호 장구가 없는 사람을 보면 공격적으로 변했다.) 수전은 여자들이 메저키스트가 되도록 길러진다고 유감스러워했고 여자들이 여기서 저항해야 한다고 했다. (100쪽)

나는 이것저걱 여러 가지를 다 하고 싶어한 적이 없다. 늘 한 가지만 잘하고 싶었다. 수전하고는 정반대라 수전에게는 분명 단점으로 보였을 것이다. (103쪽)

수전은 잠을 최대한 적게 잤다. 무의식 상태에서의 뇌 활동이 유익하다는 생각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잠도 어린시절처럼 시간 낭비로 여겼다. (106쪽)

수전은 혼자 있는 것을 도저히 견디지 못했다. 수전은 늘 하고 싶은 일이 많았지만 혼자서 하려고는 안 했다. 수전에게 혼자 경험해서 더욱 강렬한 경험이란 없었다. 밥을 먹는다는가 하는 일상적 일도 혼자 한다면 수전에게는 형벌이나 다름없었다. (107쪽)

수전의 연설에 대한 고약한 반응이 질투심 때문이라는 수전의 말이 맞는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그렇지만 질투가, 지독하고 악의에 들끓는 질투가 늘 수전을 따라다녔다는 사실은 안다. (중략) 대체 거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한 친구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 게 떠오른다. "다들 극도로 충격적인 일을 상상하지. 사실은 흔하디 흔한, 아들을 놔주지 않으려는 소유욕 강한 엄마와 죄책감에 시달리는 아들이 있을 뿐인데." (114쪽)

열정, 아름다움과 쾌락에 대한 막대한 욕구와 갈망으로 부러울 만큼 풍요로운 삶을 지칠 줄 모르는 속도로 영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수전에게는 불만이라는 치명적인 병이 있었고 아무리 여행을 해도 충족되지 않는 답답함이 있었다. 또 부인할 수 없는 대단한 성취를 해냈고 힘들게 명예를 얻었으며 찬사를 받아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수전은 실패했다는 느낌을 과부의 상복처럼 영 떨쳐버리지 못했다.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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