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유령 - 버지니아 울프의 거리산책과 픽션들
최은주 지음 / 엑스북스(xbooks)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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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에는 기억을 채우는 시간들이 있다. 그 시간들은 기억의 밀도에 따라 길게도 짧게도 채워갈 수 있다. 기억은 시간을 제 마음대로 구성하기 때문이다. 완전함에 가까운 기억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긴 시간처럼 조작될 것이다. 기억이 현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진실만을 담고 있지 않은 이유이다. 그만큼 기억은 교묘한 얼굴을 하고 있다. (10-11쪽)

읽는다는 것은 서술된 사건과 그 의미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빛에 대해서, 마음에 대해서, 그리고 세상을 향해 나 있는 길들에 대해서, 궁극에는 어쩌면 모든 진실에 대해서, 벼린 언어들의 반짝임에 대해서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한 것에 멈칫하고 술렁거리므로 독서는 수동적이거나 정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강렬한 운동적 반응을 일으킨다. ‘여러 번‘을 헌신적으로 읽을 때, 그때마다 보지 못했던 문장과 이야기가 드러날 것이다. ‘도대체 앞서 읽을 때 뭘 한 거야?‘라고 묻게 된다. (중략) 늘 거기 있었으나 알아차리지 못했던 일상의 부분들, 사물이든, 사람이든, 나를 막아서지 않고 존재했으므로 무심했던 것들이 어느 날 불쑥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할 것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진리를 내밀 것이다. 그렇게 결여를 통감하는 것에서 삶의 성질을 알 수 있는 것이다. (19-20쪽)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독서의 목적을 생각했을 때,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은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이나, 배신, 복수, 사고, 죽음 같은 사건의 전개, 클라이맥스, 결말이 없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에서는 끝에 다다라서도 끝나지 않은, 충족되지 않음. 충족될 수 없음이 있다. 대신 그녀의 소설은 독자를 경험하도록 한다. (72쪽)

소설은 사물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연관짓고 그들의 깊은 심연 속에 보편성을 이어 놓는다. (103쪽)

그러나 원래부터 의미 있는 일은 없다. 누가 봐도 별 의미없는 일에 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때만 의미가 생겨난다. (122쪽)

버지니아 울프 자신도 말했듯이 우리는 우리보다 더 동질적이었던 그 시대의 독자들과는 다르다. 따라서 잘못 읽는 것이 당연하다. (중략) 중요하다고 여기는 탄생, 성장, 결혼, 출산, 노화, 죽음과 같은 사건들을 사소하다고 여기는 단상들의 우위에 놓지 않고 동시적으로 써나가고 있으므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건들이 전경이 아닌 단상들과 동등하게 뒤섞여 혼재할 뿐이다. 분명 인생 전반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그려내고 있지만, 변하는 것들, 그리고 변하기 때문에 순간에 대해 거대한 눈으로 바라볼 것에 온 집중을 다하고 있다. (186-187쪽)

[댈러웨이 부인]에서 [등대로]로, 그리고 [파도]롤 갈수록 외부의 사건들은 중요해지지 않는다. 외부의 사건과 충돌하며 생겨나는 개인의 느낌, 슬픔, 시선이 우선한다. 이런 읽기 어려운 책을 어째서 읽어야 할까,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어째서 우리는 외부적인 사건에 충격받은 개인의 삶을 살아가는 주체이면서도 개인의 느낌, 슬픔, 시선이 어렵다는 것인가? 소설은 해답을 주는 대신 느낌, 슬픔을 직시하게 하므로 고통스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직시하게 하며, 다시금 사유에 동참하게 만든다. 그렇게 침묵에 닿아 있는 내면에 침잠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으므로 직시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200-201쪽)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관찰능력, 그리고 공통감각을 찾아내는 것,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느낄 수 있는 오버랩되는 삶의 유사성, 연륜에서 오는 경험 같은 것들로 타인을 읽어낸다는 것이라라.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을 얼마나 제대로 일해할 수 있을까?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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