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보는 듯 한, '기울어진'에 꽂혀 집어 든 책이다. 엉덩방아를 찧은 후, 회복이 더디다. 지팡이는 이제 내려 놓았지만, 한 쪽으로 조금 기우뚱거리며 걷는다. 그러면서 안팎으로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을 떨칠 수 없을 정도로 위축되어, 활동 반경도 반이나 줄어들었다. 그 간에 해 온 활동이 줄어든 게 아니라 선뜻 나설 수 없는 일들만 있는 듯 하다. 할 수 있는데도 하고 싶은 데도 하지 않는 선택의 문제와 원천적으로 할 수 없는 무능의 느낌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잠을 많이 자고 있고, 겨우 매주 한번 '논어'만 부여잡고 있다. 

'기울어진 미술관'은 남성 화가와 여성 화가, 백인 모델과 흑인 모델, 장애인과 비 장애인, 건강과 질병,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어른과 어린이, 정복자와 원주민, 예술가와 후원자, 부자와 가난한 자, 노동 계급과 부르주아, 도시화와 미 개발, 젊음과 늙음, 예술과 정치, 작품과 투자, 근대화와 환경오염, 인간과 동물, 결혼과 비혼, 부모와 자녀, 재난과 사회적 약자 등등에서 기울어진 예술 작품들이 가득하다.

그 작품 속에는 수 많은 마이너가 있다. 힘 있는 자들의 시선에 맞춰진 작품 속에서 볼품없는 그들을 끄집어 내어 보여준다.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다. 특수 교육도 공부했지만, 이제야 겨우 장애인을 조금 이해한다면,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메이저가 되었다가 마이너가 되었다가 했다. 만약 그들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면, 별반 다를 게 없을 듯 하다. 눈에 먼저 띄는 게, 찾아서 보는 게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이 나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니, 편향된 시각이 아니라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튼, 지금은 삶의 한 귀퉁이가 뭉텅 잘려 나간 듯 하다. 몇 년 전 감악산 출렁다리를 건너다가 십 년 감수한 느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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