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삼중당문고 세대라는 표제가 눈에 띄어 집어든 책이다. 빽빽히 적혀있지만 숨벙숨벙 읽힌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음, 음, 음... 온전히 나의 책으로 온 삼중당문고, 을유문고, 서문문고가 기억난다. 몇 권의 책들이 아직도 책 꽂이에 있다. 흰 칼라의 교복을 입고 한 손에는 작은 독서노트,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학교를 오가며 단어도 외우고 시도 외우곤 했던 시절이었다. 교회에서 반주를 하니, 책읽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오빠들과 친구들이 마음을 담아 선물로 줬던 삼중당문고도 기억난다. 그들은 잘 살고 있을까... 60년대 대학생도, 청년이 아니라, 80년대 대학생이 되면서 계엄령이 내려지고 과외도 금지되고 그러했던 시대를 되돌아 본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국기게양식으로 길 가다가도 가슴에 손얹고 서 있었던 것, 계기교육을 빠짐없이 행사노래도 불렀는데, 교련복 입고 제식훈련 대회도 하고, 일과 학업을 공부할 수 있는 공장으로 가는 이도 있고, 여자가 대학을 당연하게 가는 일은 아닌 듯한, 교회도 대학부가 만들어졌다는 것(돌아보면, 대학 못 간 친구들이 태반이었는데), 오직 대통령은 그 사람만 당연하다고, 정말 영원히 존재할 것으로 알고 자랐던 시절이었다. 사고의 변혁, 시각의 변화는 무척 어려웠다. 이런 저런 책을 읽었고, 모임도 하고 토론도 하였지만, 너무나 딴 세상이었다. 돌아보니 이도 저도 못한 시절이었다. 세번째 동생 정도가 되어서야 대학생들이 다시 일어났다. 기껏 발령을 받고 전교조의 전신 모임에서 부터 전교조 활동을 했을 뿐, 하다보니 그들도 자기 몫만 챙기고 있어 탈퇴를 했다. 정말로 좋은 사람들도 있지만, 아닌 사람들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손에서 놓지 않았던 책들, 경험하지 못한 과거와 그들의 목소리는 책을 통해 들려오고 있지만 내 삶과의 연결은 여전히 만드는 중이라고 할까. 책 읽기를 이렇게 숨벙 숨벙, 후르룩하고 하다니, 그러니 내 삶과의 연결점이 없는 걸까. 시간이 많이 흘렀다. 과거의 감정에 매몰되기 전에 흘러 보내고 현재를 즐기는 거다. 즐겁게 살자.   


* 좋아하는 사람, 장정일 [삼중당 문고]를 읽으며, 추억을 공유한다. 

열다섯 살,

하면 금세 떠오르는 삼중당 문고

150원 했던 삼중당 문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었던 삼중당 문고

특히 수학시간마다 꺼내 읽은 아슬한 삼중당 문고

위장병에 걸려 1년 간 휴학할 때 암포젤 엠을 먹으며 읽은 삼중당 문고

개미가 사과껍질에 들러붙듯 천천히 핥아 먹은 삼중당 문고

간행목록표에 붉은 연필로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을 표시했던 삼중당 문고

경제개발 몇 개년 식으로 읽어간 삼중당 문고

급우들이 신기해하는 것을 으쓱거리며 읽었던 삼중당 문고

표지에 현대미술 작품을 많이 사용한 삼중당 문고

깨알같이 작은 활자의 삼중당 문고

검은 중학교 교복 호주머니에 꼭 들어맞던 삼중당 문고

쉬는 시간 10분마다 속독으로 읽어내려간 삼중당 문고

방학중에 쌓아 놓고 읽었던 삼중당 문고

일주일에 세 번 여호와의 증인 집회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고 교장실에 불리어가, 퇴학시키겠다던 엄포를 듣고 와서 펼친 삼중당 문고

교련 문제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을 때 곁에 있던 삼중당 문고

건달이 되어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와 쓰다듬던 삼중당 문고

용돈을 가지고 대구에 갈 때마다 무더기로 사 온 삼중당 문고

책장에 빼곡히 꽂힌 삼중당 문고

싸움질을 하고 피에 묻은 칼을 씻고 나서 뛰는 가슴으로 읽은 삼중당 문고

처음 파출소에 갔다왔을 때, 모두 불태우겠다고 어머니가 마당에 팽개친 삼중당 문고

흙 묻은 채로 등산배낭에 처넣어 친구집에 숨겨둔 삼중당 문고

소년원에 수감되어 다 읽지 못한 채 두고 온 때문에 안타까웠던 삼중당 문고

어머니께 차입해 달래서 읽은 삼중당 문고

고참들의 눈치보며 읽은 삼중당 문고

빳다 맞은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읽은 삼중당 문고

소년원 문을 나서며 옆구리에 수북히 끼고 나온 삼중당 문고

머리칼이 길어질 때까지 골방에 틀어박혀 읽은 삼중당 문고

삼성전자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문홍서림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레코드점 차려놓고 사장이 되어 읽은 삼중당 문고

고등학교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시공부를 하면서 읽은 삼중당 문고

데뷔하고 읽은 삼중당 문고

시영 물물교환센터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박기영 형과 2인 시집을 내고 읽은 삼중당 문고

계대 불문과 용숙이와 연애하며 잊지 않은 삼중당 문고

쫄랑쫄랑 그녀의 강의실로 쫓아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여관 가서 읽은 삼중당 문고

아침에 여관에서 나와 짜장면집 식탁 위에 올라앉던 삼중당 문고

앞산 공원 무궁화 휴게실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파란만장한 삼중당 문고

너무 오래 되어 곰팡내를 풍기는 삼중당 문고

어느덧 이 작은 책은 이스트를 넣은 빵같이 커다랗게 부풀어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네

집채만해진 삼중당 문고

공룡같이 기괴한 삼중당 문고

우주같이 신비로운 삼중당 문고

그러나 나 죽으면

시커먼 배때기 속에 든 바람 모두 빠져 나가고

졸아드는 풍선같이 작아져

삼중당 문고만한 관 속에 들어가

붉은 흙 뒤집어 쓰고 평안한 무덤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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