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멸 이동시 총서 1
정혜윤 외 지음, 이동시 엮음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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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고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바로 시이다. 살아 있는 움직이는 시. 파고 파내도 끝이 없는 이야기. 이야기와 동물과 시이다. 세 가지 단어이지만,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동물이야말로 가장 생태적으로 함축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아 있는 일 분, 일 초마다 이야기가 피어나오기 때문이다. (4쪽)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대한민국처럼 사막도 없는 나라의 동물원에서 나 구자*와 같은 단봉낙타를 왜 길러야 하는지. 그리고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이 돈다고 왜 오래 전에 입국한 동물원 낙타부터 검사해야 하는지. 감금의 이유나 검사의 근거에 대한 답을 못 듣고 나 구자는 죽을 것이다. 그것이 동물원에 갇혀 살다 죽는 낙타를 비롯한 동물들의 운명이니까. (39쪽)

*구자: 나는 단봉낙타고, 이름은 구자다. 2000년에 태어났으니 올해로 스무 살이다. (36쪽, 시의 첫째줄)

우리도 하나하나 엄연한 생명, 엄연한 세상인디, 물건 찍어내듯 공장에 가둬두고 기르고 죽이고 기르고 죽이고 찍어내고 찍어내고 찍어내듯 마구 만들어 잡아먹는 닭이다. (중략) 닭들의 말을 닭 치고 잘 새겨들을 것이니 시간이 얼마 없다. 지금 당장 닭 치고 모든 것들 바꾸지 않으면 더 무서운 물난리, 불바다, 병 창궐, 지진에, 방사능 유출, 나는 이제 죽을라네. (66-67쪽)

나(혹등고래)는 동정이나 환호가 아니라 공존을 바란다. 나를 신비화하지 말라. 나를 마스코트 취급하지 말라. 나를 ‘친구‘라고 부르려면, 적어도 동등한 존재로 대하라. 나를 다른 존재로 동등하게 대우할 수 있게 될 때라야 비로소 인간 스스로도 제대로 대우할 수 있게 될 테니까. (96-97쪽)

언제부터인가, 내 몸에서 뽑아낸 기름이 인간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헛소문이 돌면서, 한국에서만 매년 나를 수만 톤씩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작은 나라에서 나를 잡아들이는 양이 세계 3위다. 내 몸에서 나는 기름은 그저 평범한 물고기 기름일 뿐이다. 당신들은 다른 기름이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나를 먹지 않아도 얼마든지 살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남극의 생물들이 먹을 양식은 나뿐이다. 나를 그들에게 양보해 달라! (112쪽)

누군가가, 지금 이 순간에도 코로나19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치열하게 파고들고 있을까요? 중간 숙주 동물이 천산갑인지 아닌지 밝혀질까요? 확실한 것은 이 바이러스가 야생 동물에게서 전파됐다는 점, 인간이 그 동물의 서식지 점점 깊숙이 침투하면서 감염 접점이 크게 확대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두 가지 명제만으로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의 근본 원인을 직시하는 것은 곧 동물에 주목하는 것이다. 코로나19는 물론, 앞으로 다가올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질병X‘ 역시, 동물에게서 나오고, 인간과 동물의 늘어난 접점에 의해 확대 전파될 확률 매우 높습니다. 유엔보고서에 따르면 새로이 창궐하는 전염병의 75%, 이미 알려진 전염병의 60%가 동물로부터 유래했습니다. 이쯤되면 질병X는 동물X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동물문제를 해결한다고 질병X가 반드시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동물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질병X 예방을 바랄 순 없습니다. (126-127쪽)

제대로 된 자원 순환의 출발점은 순환 가능한 자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가장 오래 쓰이고, 가장 빠르게 분해되며, 가장 적은 에너지로 다시 쓰임을 창출하는 자원들로 된 물자의 선택적 사용, 그리고 그런 물적 토태로 이루어진 경제가 자원 순환 경제입니다. (138쪽)

야생 동물은 야생 동물답게,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접촉하지 않아야 한다. 다가가고 만지고 죽이고 먹는 것은 야생 동물과 인간의 질서를 깨는 짓이다. 야생 동물을 모아둔 실내 동물원이나 카페가 속속 선을 보이고 있다. 거기서 야생 동물에게 곧장 다가가고 만지고 안고 논 아이들은 돌오름길 같은 숲길에서 노루를 비롯한 야생 동물들을 만나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165쪽)

쓰레기가 쓰레기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내 손에서는 그랬다. 나는 쓰레기를 잠깐씩만 만져왔으므로. 더군다나 쓰레기는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아직 쓰레기가 아니었으므로 쓰레기란 내가 원하는 물질을 깨끗하게 감싸던 것. 손과 물건 사이의 얇고 가벼운 한 겹. 어느새 불필요해진 제품. 버리고 돌아서면 사라지는 기억. 그래서 아주 잠깐이었던 무엇.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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