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게 나았을 텐데. 한세진과 대화하면 자주 이렇게 되었다. 언짢고 불편해졌다.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말과 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해버린 말들 때문에. (62쪽)
한영진이 한세진의 운동화를 종종 신고 나갔다. 한세진은 언니가 그렇게 해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남은 걸 신었고, 자기걸 건드리지 말라고 나중에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래도 무언가를 느끼기는 했을 것이다. 어떤 감정을. 한영진은 최근에 그걸 생각할 때가 있었고 그러면 얼굴이 빨개지곤 했다. 어린 동생에게 잘못을 했다고 느꼈다. 손써볼 수 없는 먼 과거에 그 동생을 두고 온 것 같았다. 이제 어른이 된 한세진에게 사과한다고 해도 그 시절 그 아이에겐 닿을 수가 없을 것 같았고. (63쪽)
그런데 엄마, 한민수에게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아. 그 애는 거기 살라고 하면서 내게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어. 돌아오지 말라고. 너 살기 좋은 데 있으라고. 나는 늘 그것을 묻고 싶었는데.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한영진은 오래 전에 그 말을 들었고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그 말을 지침으로 여겼다. 이순일도 그랬을 거라고 한영진은 생각했다. 살아보니 정말이지 그게 진리였다. 현명하고 덜 서글픈 쪽을 향한 진리.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81-82쪽)
이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다투거나 하면 즉시 개입할 수 있었는데, 한쪽을 혼내거나 둘 다 혼내거나 달래거나 중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가능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릴 때만큼 자주 다투지는 않았지만 훨씬 신랄하고 내밀한 것을 두고 다투었다. 그게 무엇이든 이순일은 가책을 느꼈다. 그게 무엇이든, 자기 손으로 건넨 것이 그 아이들의 손으로 넘어가 쪼개졌고 그 파편을 쥐고 있느라 아이들이 피를 흘리는 거라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109쪽)
미안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거라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그것이 뭐가 어렵겠는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그러나 한영진이 끝내 말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걸 이순일은 알고 있었다.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거라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그 아이가 말하지 않는 것은 그래서 나도 말하지 않는다. 용서를 구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있다는 것을 이순일은 알고 있었다. (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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