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말한 '결정자가 된다는 것'의 기준이 마음에 든다. 월리스가 스스로 결정자가 되어 시도한 작품들이다. 그의 글은 상세하다 못해 분명 읽고 있는데도 세밀화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일리노이주 축제의 촌스러운 사람들 가운데 출입기자증을 꼭 목에 걸고 있는, 어린 시절에 가지고 있던 '나만을 위해' 준비된 축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축제로 인식하게 되면서, 어린 시절의 환상을 깨며, <데이비드 린치, 정신머리를 유지하다>미국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 <무엇이 종말인지 좀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종말인 것만은 분명한>존 업다이크 폄하, <수사학과 수학 멜로드라마>, <결정자가 된다는 것: 2007년 미국 최고 에세이 특별 보고서>최고의 에세이는 감독이든 작가든, 심지어 독자이든 '스스로 결정자가 되려고 시도하는 작품(279쪽)'이어야 가치가 있다고. 결국 어떤 상황을 말하든, 타인에 대해 말을 하고 있어도 작가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파고 들어가 자신의 생각을 온전하게 풀어 놓을 수 있는 글이 진짜로 좋은 글이다. 지금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글로 제대로 풀어 놓은 월리스가 부럽다. 그래도 월리스 글은 지독할 정도로 너무 과하다. 우리에게는 선택할 여지가 있기에 듬성듬성 읽기도 하고, 잠깐 딴 생각을 하면 금방 다른 길로 들어서면서도 읽었다. 픽션은 무에서 나오는 것, 넌픽션은 '무한한 선택의 완전한 자유(265쪽)'에서 나오는 것... 자유롭게 선택하면서 읽었다. 하지만 페이퍼는 이렇게 쓰고 쉽지는 않았고, 더 잘 쓰고 싶었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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