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목적은 완전히 대립하는 두 관점, 즉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세계관으로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데 있다. (프로이트는 모든 사람을 이 두 범주로 나누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대립하는 관점으로 인생의 기본적인 문제들을 다룰 것이다. (15쪽)
우리는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논변들은 타당한 증거를 지니는지, 과연 그럴듯한지를 평가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의 논변이 얼마나 객관적인 증거를 기초로 하고 있는지, 아니면 얼마나 현실을 왜곡한 감정을 기초로 하고 있는지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 (78쪽)
루이스와 프로이트는 둘 다 도덕률에 복종하려 했는데, 프로이트는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과 비교 평가하여 자신이 "대다수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다"고 결론지었다. 루이스는 자기 행동을 도덕률이 요구하는 바와 비교했고, "나 자신의 성격에 무시무시한 것들"이 있음을 발견하고 "질겁했다." 이로 인해 그는 자신이 외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이 깨달음은 그가 무신론을 버리고 영적 세계관으로 이행하는 많은 단계 중의 하나가 되었다. (104쪽)
루이스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강조했다. 세상의 어떤 쾌락도 우리를 만드신 존재와의 관계를 향한 갈망과 절실한 필요를 만족시키거나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를 만드신 분과의 관계를 먼저 구한다면 이를 얻을 뿐 아니라 행복도 넉넉히 얻게 되리라고 루이스는 믿었다. (144-145쪽)
프로이트는 인생에서 지속적인 행복을 발견하리하는 기대를 단념했다. 그는 미래에 낙관적인 사람들에 대해 비이성적이며 "진리와 상충된다"고 생각했다. 프로이트는 평생 ‘우울증 발병‘으로 괴로워하다가 인생의 끝이 다가왔을 때 이런 질문을 던졌따. "인생이 힘들고 기쁨이 없다면, 게다가 너무나 비참하여 죽음만이 우리를 구해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면 오해 산다는 게 뭐가 좋겠는가?" (169쪽)
무엇이 프로이트의 인생에서 그렇게 많은 관계를 파국으로 이끌었을까? 루이스가 지적한 바로는 우정은 공통의 관심사에 기초를 두는 것으로, 프로이트와 동료들은 많은 관심사를 공유했다. 초기 프로이트 추종자들은 모두 정신분석가였으며 그의 유물론적 세계관을 공유했다. 그런데 왜 갈등이 생겼을까? 프로이트가 사람들을 불신하고 낮게 평가한 것이 그러한 갈등에 이르게 했을지도 모른다. ((243쪽)
슬프게도 프로이트는 자기 이웃을 자신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고통을 주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로 보았다. 프로이트에게 이웃은 그의 신뢰와 사랑을 얻어야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60세 때 프로이트는, 일생 동안 자신을 이용하거나 배신하지 않을 친구들을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회심 전의 루이스는 프로이트처럼 조심스럽고 방어적인 태도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회심 후에는 모든 개인을 영원히 사는 존재로 보았다. "당신은 단지 죽어야 할 운명을 가진 이에게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국가, 문화, 예술, 문명 등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경솔함이나 무례함이나 우월감을 갖지 않고, 죄가 무엇인지 깊이 알면서도 죄인을 사랑하는 참되고 희생적인 사랑"이 특징이 되어야 한다. 루이스의 사랑의 개념은 그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였고 그를 매우 다른 사람-"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였다. (249-250쪽)
고통은 매일의 삶 속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고통이 우리 삶의 질에 미칠 영향을 결정한다. 만일 루이스처럼, 어떤 지고한 존재가 우리를 사랑하며 궁극정으로 우리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는다면 인내와 희망을 가지고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물론적 세계관을 고수한다고 한다면, 우리가 부닥치는 혹독한 현실에 굴복하라는 프로이트의 훈계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프로이트의 결론은 이것이다. "신자가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 온다면, 이는 그가 자기 고통에 대한 위로와 위안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조건적 굴복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는 아마도 길을 멀리 돌아가는 노력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289쪽)
프로이트는 죽음을 두려워했고 자신이 죽을 날짜에 대해 강박관념을 가졌지만, 주치의에게 자기 생이 다하는 때를 알려 줘야 한다고 고집했다. (302쪽)
프로이트는 안락사로 죽기 전날인 1939년 9월 22일에 서재에서 발자크의 책 [파멸의 가죽]을 골랐다. 그는 몇 시간 후에 의사에게 자기 생을 마치게 해 달라고 부탁할 셈이었다. 그가 일생 동안 읽은 수백 권의 책 중에서 왜 하필 [파멸의 가죽]인가? 이 소설의 구성은 단순치 않다. 부와 명성을 갈망하는 ‘젊은 과학자‘인 주인공 라파엘은 스스로를 매우 재능 있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실패한 사람으로 생각하며, 자살을 계획한다.(중략)왜 프로이트는 죽기 직전에 마지막 책으로 특별히 발자크의 이 작품을 선택했는가? 부모의 영적 세계관을 등지고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부와 명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과학적 세계관을 수용하게 되었을 때, 프로이트는 스스로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고 느꼈는가? 프로이트는 심리연구를 자신의 연인이라고 말했다. 베르다흐와 발자크의 두 작품 속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프로이트는 자신이 광란적 공포와 두려움 가운데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두려워했는가?(305-308쪽)
그러나 루이스는 그의 슬픔을 애써 감당하면서 "사별이란 사랑의 경험상 보편적이고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연애 다음에 결혼이 오듯이, 결혼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죽음이 온다." 루이스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생각하고 느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편지들과 당신 그가 읽은 책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중략) ‘죽음을 친구로 그리고 구원자로 볼 수는 없겠는지요? 죽음은 당신을 괴롭히는 육신을 벗어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죄책감을 벗어 버리거나 컴컴한 지하실을 빠져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두려워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이 세상이 당신에게 너무 친절해서 세상을 떠나는 일이 유감스러운가요?" 그런 다음 루이스는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하며 그녀를 위로하려고 애쓴다. (316-317쪽)
(위의 내용에 이어서)"우리가 뒤에 남기고 떠나는 것들보다 더 좋은 것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당신에게 ‘평안하여라, 애야, 평안하여라. 편히 쉬어라. 이제 잡고 있는 것을 놓아라. 영원한 팔이 너를 품을 것이다. ...... 너는 나를 그렇게 믿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신다고 생각되지 않는지요? 물론 이번이 끝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번이 좋은 연습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루이스는 이 편지에 "당신의 벗(그리고 당신과 마찬가지로 여행의 끝에 다다른 지친 여행자) 잭"이라고 서명을 남겼다. (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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