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알고 있음에도 가장 숙고되지 못한 ‘십계’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
김진호 외 9인 지음 / 글항아리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이 법은 과거의 주체들인 ‘조상‘이 아니라 현재의 주체들인 "여기 살아 있는 우리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 물론 그 법의 표현들은 [출애굽기]와 거의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그 법은 과거의 법이 아니라 현재의 법이다. 즉 그 법령 하나하나에 들어 있는 의미는 현재의 경험 속에서 재해석된 것이며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을 성찰하게 한다. 신이 바로 그런 현재의 사람들과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법률을 말하고 있다. (10쪽)

‘하나‘의 의미를 잘 생각해보면, 유일신론과 범재신론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하나‘는 사실상 ‘전체‘이자 ‘근원‘을 나타내기 위한 수학적 표현일 뿐이기 때문이다. (37쪽)

문득 나는 제2계명에 대한 데리다식 독법이 진리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영감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를 교리적.교조적 음성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너희가 찾을 수 있어? 그것이 가능이라도 한 것일까?"라는 의심의 해석학 내지는 "틈과 균열의 존재론으로 신을 바라볼 수도 있겠다"는 묘한 충동으로 말이다. (43쪽)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노동과 생산성의 기준에 대한 암묵적 합의는 이른바 ‘생산적 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영국적으로 열등한 사회적 지위에 머물게 하며 이들의 희생과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ㅣ 만든다는 점에서, 노동 과정 자체를 새롭게 상상하는 것이 안식일의 참 의미를 되찾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73쪽)

많은 아이가 가장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할 사람인 부모를 통해 가정 안에서 최초의 폭력을 경험한다는 사실과 이에 대한 충분한 인식 없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4계명이 절대 계명으로 수직적으로 선포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유해함... (101쪽)

결국 무수한 실존적 자살이 야기한 담론 현상들을 진지하게 해석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한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자살을 긍정과 부정의 이분법 틀로만 바라봄으로써 수많은 자살의 실제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중략) 즉 교회와 신학은 낡고 경직된 자살교리의 옷을 벗고 사회를 직시하면서 자살을 이해함으로써 제5계명의 재해석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117쪽)

막강한 힘을 가진 가부장들의 ‘질투심‘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보고, 통제하기 어려운 사적 복주의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 차원에서 간음의 문제를 다뤘다는 것이 중요하다. (중략) 다시 말해, 제6계명은 개인적 차원에서 걷잡을 수 없는 폭력을 통해 다뤄졌던 ‘간음‘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메커니즘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읽을 수 있다. (136쪽)

고대 이스라엘에서부터 이미 그러했듯이, 십계명은 개인들의 집합적 공동체 내지는 인간들이 맺는 미시적. 거시적 관계를 총체적으로 지시하는 ‘사회‘ 그 자체에 주어진 집단적이고도 제도적인 수준의 개혁 요구다. 제7계명을 포함한 십계명 전체는 인간을 소외된 존재, 즉 노예화된 삶으로 유인하는 이스라엘의 정의롭지 못한 사회적 관계의 구조를 개혁하라는 야훼 하나님의 명령이었다는 것이다. (165쪽)

정의를 ‘법의 말‘을 통한 통치, 곧 법치와 동일시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법과 정의의 관계를 숙고한 데리다는 "법은 정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계산의 요소"로 구성되는 법과 달리, 정의는 언제나 "계산 불가능한 것"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의에 관해서는 항상 아마도라고 말해야"한다. ‘아마도‘의 가능성을 벗어던진 정의, 법치의 이상과 동일시하는 정의는 ‘법의 말‘을 통한 주권자의 현 지배를 정당화하는 권력의 수사로 전락할 뿐이다. (중략)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에 이르는 참말을 하는 것이다. 참말은 무엇인가? 그것은 ‘법의 말‘로 환원되지 않는 말, ‘아마도‘의 가능성을 철회하지 않는 말, 그래서 이웃을 살리는 희망의 말이다. (180-181쪽)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결혼 제도가 개개인에게 안정성과 의미를 주었지만, 21세기는 무한 경쟁이 삶의 조건이 되어버린 시절이다. 끊임없이 업데이트되지 않으면 대체되고 버려지는 세상에서, 이제 경쟁력 있는 삶의 형태는 ‘개인‘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가족이 있다는 것, 내가 돌봐야 하고 재화를 나눠야 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내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불리한 삶의 조건이 되어버렸다. (201쪽)

10개의 계명 안에 탐욕 금기가 들어있다. 선민을 자처하던 이스라엘은 지켜야만 했던 금기가 많았다. 제의와 음식 금기를 비롯하여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규정짓는 다양한 실천은 열 계명 속에 들어가기에 충분할 만큼 중요했다. 그럼에도 이를 대신하여 탐욕 금기가 들어간 것에는 어떤 함의가 있을까. 탐욕이 지배 문화가 될 때 공동체가 즉각 붕괴됨을 예감했기 때문일까. 지금 여기, 이윤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탐욕이 퍼져 있다. 탐욕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워야 할 종교 공간마저도 욕망의 지배를 받은 지 오래다. (223쪽)

서로 연관을 맺으면서 상호작용하는 에코시스템의 원리처럼 인간은 더불어 살게 되어 있다. 서로의 관계에 생명을 부여하고 그 생명을 유지하는 것. 이러한 삶이 바로 ‘존재로 사는 방식‘이다. 이제 우리는 관계성의 구조를 인간 공동체라는 담을 넘어 지구의 모든 존재에게로 확장하는 지점에 서 있다.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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