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는 말은 무신론자나 하는 말입니다 - 요하네스 라우가 들려주는 그리스도인의 소명
요하네스 라우 지음, 박규태 옮김 / 살림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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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알 수 없는 곤고함, 그 어떤 조언이나 도움조차 얻을 수 없는 최악의 상황 속에 빠져 설교는 고사하고 친구로부터 안부 인사와 몸짓과 말 한 마디조차 얻을 수 없는 사람에게도 구약과 신약의 성경 말씀은 든든한 발판이요. 의지할 수 있는 닻이요. 아르키메데스의 점이 되어 줍니다. (22쪽)

우리의 일상에는 타인을 바라보며 나누는 일(Zuwendung)이 부족합니다. (중략) 형제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인식할 때, 비로소 타인을 형제로 바라보게 됩니다. (47-48쪽)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지향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고통과 슬픔에 예민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의 올바른 초점을 인식하고, 마이애미와 플로리다뿐만 아니라 고통과 비탄과 죽음이 뒤덮은 섬들도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66쪽)

자신들을 현대인으로 여기던 나치 시대 사람들은 모세와 아브라함, 이사야와 예수의 옛 역사를 더 이상 자신들과 관련된 역사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넓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합니다. (77쪽)

하나님을 바라봄이 없이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고 자신들의 미래상을 실현하려고 할 때면, 땅 위에 천국을 만들려는 그들의 시도는 번번이 땅 위의 지옥을 만들어내곤 하였습니다. (89쪽)

그런고로 우리는 이 땅에 천국을 세우려고 할 것이 아니라, 더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려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중략) 그리고 산상설교가 말씀하는 바를 올바로 이해하고 있다면, 정치는 종종 주먹을 쥔 채 그저 저항하던 입장으로부터 쥔 손을 펴고 ‘무언가를 섬기고 생각하는 존재(Fur-etwas-sein)‘로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151쪽)

의(정의), 평화, 자유, 그리고 관용이라는 말은 단지 정치인들의 수사가 아니라 하나같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우리가 이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중략)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의라는 말을 의회에서 끌어내어 일상의 삶 속으로, 일상의 정치 속으로 가져와야만 합니다. 성경이 아는 것은 하나님 앞의 의라는 신학 개념만이 아닙니다. 성경은 거기서 더 나아가 일상의 삶 속에서 더 많은 의를 이루려 하고 더 나은 관계를 만들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153-154쪽)

저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고 오로지 바깥에 있는 제도 때문에 속병이 난 것처럼 행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159쪽)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은 이 세상을 떠맡아 이곳을 바꾸고 개선하며 인간이 살아갈 만한 곳으로 함께 만들어 갈 책임을 짊어진 자리입니다. (182쪽)

성찬과 사랑이라는 두 극점 사이에는 우리가 서로 섬겨야 한다는 말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삶의 실상이 이 말씀과 완전히 딴판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우리 삶을 들여다 보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 무리, 자기 정당, 자기가 속한 사회 계층만이 이득을 누리게 하려고 발버둥 칩니다. (224쪽)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 몸, 우리 몸들, 우리 지체들이 그저 서로 바라보고 서로 지배할 목적으로 존재하지 않도록 만드는 연습을 시작해야만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그 몸과 지체들을 향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귀, 내 자신의 입, 내 자신의 손, 다른 사람의 발, 이것이 실은 다 한 몸입니다. (228쪽)

어느 누구도 이 교회를 자신에게 예속시켜서는 안 됩니다. 어느 누구도 이 교회를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도구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우리가 이 하나님 말씀이 자유롭다는 것을 인식하고 고백하며 삶으로 보여줌으로써 증명됩니다. (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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