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위안 - 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청미래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진실과 동의어로 보는 것은, 인기가 없는 것을 오류와 동의어로 믿는 것만큼이나 고지식한 짓일 것이다. 하나의 관념이나 행동이 유효하느냐 않느냐는 그것이 폭넓게 믿어지느냐 아니면 매도당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논리의 법칙을 지키느냐의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다. (62쪽)

우리 인간은 당장의 충동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 대신 에피쿠로스보다 백 년도 더 전에 소크라테스가 도덕적 정의들을 평가할 때에 동원했던 것과 비슷한 질문 방식에 따라서 우리의 욕망을 합리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78쪽)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에피쿠로스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쓸데 없는 의견들"로 인해서 더욱 악화된다. 그런 의견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의 우선순위를 반영하지 못하고 호화스러움과 부만을 내세울 뿐, 우정이나 자유, 사색은 좀처럼 강조하지 않는다. (91쪽)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포기하기만 하면 우리가 그렇게 분노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117쪽)

무조건 모욕으로 판단하는 그들의 성향 뒤에는 자신이 조롱당할 만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자신이 헤코지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의심할 때에는 누구든 혹은 무슨 일이든 자신을 해치려는 것으로 쉽게 판단하게 된다. (139쪽)

외부의 소음과, 그것을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마음속의 생각 사이에 방화벽을 쳐야 한다. 다른 사람의 동기에 대한 비관적인 해석을 엉뚱한 대본에 끌어들여서는 곤란하다. 이런 규칙만 지키면, 소음은 결코 달가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를 격노하게 만들 이유 또한 없는 것이 될 것이다. (140쪽)

진정한 지혜는 보다 속된 자아와의 조화를 필요로 한다. 또한 지혜는 지적이고 고상한 문화가 우리의 삶에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서 좀더 소박한 시각을 가져야 하고, 필멸의 인간이라는 틀에서 일어나는 절박하고 간혹 원시적인 요구도 받아들여야 한다. (176쪽)

우리는 가장 많이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해와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은 공허하게 비워놓은 채 오직 기억을 채우기 위해서 분투한다. (207쪽)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사랑을 거부당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한다. 그는 더 이상 혼자서만 고통받고 외로워하고 혼란을 겪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중략)
그 자신의 삶의 여정에서, 그리고 삶의 불행에서 그는 이제 자신의 개인적인 운명보다는 전체로서 인류의 운명을 더 돌아볼 것이다. 따라서 그는 고통받는 존재로서보다는 세상을 아는 존재로서 행동해야 할 것이다. (273-274쪽)

모든 괴로운 상태를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불만스러운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진정한 재앙이다......나쁜 기후를 제거하겠다는 의지만큼이나 비슷하게 우둔한 것이다. 인간의 병 중에서 가장 나쁜 병은 사람들이 자신의 병을 다스리는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치유로 보이는 것이 결국에는 그 치유의 대상이 되었던 병보다 더 독한 무엇인가를 낳았다. 즉각적으로 효과를 나타내는 수단들, 마취와 도취, 이른바 위안들이 어리석게도 실질적인 치유책으로 생각되었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고통을 곧장 진정시키는 방법들은 그 고통을 낳은 불만을 일반적으로 더욱 깊이 악화시키는 대가를 치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ㄷ르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다. (3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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