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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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불투명한 내부는 우리 삶의 부끄러움이 아니다. (51쪽)

‘진정성‘이 어떻게 정의되건 그것은 한 인간이 제 마음 깊은 자리에서 끌어낸 생각으로 자신을 넘어서서,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을 때에만 확보된다. (79쪽)

자연은 돈으로 매수할 수 없고 권력으로 호령할 수 없다. 자연 속에 이 안온한 삶을 그대로 옮겨놓으려는 자에게 돈과 권력은 자연을 파괴하는 데만 소용될 뿐이다. (89쪽)

언어는 사람만큼 섬세하고, 사람이 살아온 역사만큼 복잡하다. 언어를 다루는 일과 도구가 또한 그러해야 할 것이다. (97쪽)

그러나 적어도 인문학 분야에서라면, 그 첨단적 사고는 제 나라 말로 강의하고 제 나라 말로 글을 쓰는 과정에서만 돌출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인간의 깊이란 의식적인 말이건 무의식적인 말이건 결국 말의 깊이인데, 한 인간이 가장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그 존재의 가장 내밀한 자리와 연결된 말에서만 그 깊이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100-101쪽)

사람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사는 세계를 지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지옥은 진정한 토론이 없기에 희망을 품을 수 없는 곳이다. (156쪽)

이 나라는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어떤 역사를 살고 있지만,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그 역사의 의지와 같은 의지를 지닌 것이 아니다. 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은 역사의 무의식과 같다. 그 무의식이 늘 투표를 통해 나타나니 어쩌면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성급한 사람들에게는 투표가 ‘어느 세월에‘라고 한탄하게 하는 영원히 가망 없는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209쪽)

남자의 서서가 손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남자들의 행동거지가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벌써 풍속의 가치를 얻기 때문이다. 풍속이 만들어주고 승인해주는 남자들의 습관은 자주 남자들의 생리나 본성과 혼동되기 때문에 반성을 해도 그 반성의 효과는 없다. 생리와 본성을 어떻게 철저하게 반성할 수 있겠는가. 남자들의 권력 행사가 하나의 풍속이 되었다는 것은 그 권력의 힘이 일상의 미세한 틈에까지 스며들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214쪽)

가질 수도 누릴 수도 없지만 잊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고 보면 우리가 시에 요청하는 모든 것이 이 짧은 말 속에 들어 있는 것같다. 시는 누릴 수 없는 것을 희망하는 뛰어난 방식이자 그 희망을 가장 오랫동안 전달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258쪽)

정신은 있었던 일뿐만 아니라 있어야 할 일도 기억한다. 억제할 수 없는 욕망에 휩쓸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망을 실제의 기억이라고 여기는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억은 아직 없었던 시간의 기억, 곧 까마득한 태고의 기억이 되고 미래의 기억이 된다. (261-262쪽)

입은 동시에 ‘두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은 한꺼번에 둘 이상의 시간을 수직으로 품으며, 우리는 그 수직의 시간을 ‘시적 순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말은 시간을 겹쳐놓지 않는다. 그러나 사물 그 자체인 말이 있다면, ‘떡‘이라는 단어 그 자체가 떡이고, ‘바람‘이 바람이고, ‘돌‘이 돌이라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시의 언어는 ‘바람‘이라고 말할 때 바람 그 자체가 되려고 한다. (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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