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읽는 데서 느끼는 즐거움만 한 것을 한번도 글을 쓰는 일에서 느낀 적이 없다. (6쪽)
서문을 되새김질해서 얻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서문과 본문 사이에 생긴 모슨(틈) 혹은 미해결을 감지하는 것이다. 서문과 본문 사이에 이런 모순과 미해결이 일어나는 이유는, 서문은 크고 본문은 작기 때문이다. 이런 전도는 서문과 본문의 중요성이 양적 문제에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서문은 늘 본문보다 짧지만, 저자의 욕망이 고스란히 투영된 서문은 그것의 실현물인 본문보다 크다.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계속 글을 쓰게 되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서문을 끝내 완성하기 위하여. (13쪽)
참으로 괴이한 것은, 그리 좋다는 책을 읽고서도 개과천선은커녕 되레 성서와 교훈서를 깔보니, (27쪽)
"격언이란 시중에 널리 쓰이는 말이며, 어떤 사태와 시기에 들어맞는 말로서, 글자 그대로의 말과는 다른 속뜻을 가지고 있다." (36쪽)
스피노자는 사람들이 이성을 경시한 결과 미신을 신의 신탁으로 여기게 되었고, 두려움 때문에 광기에 내몰려 자발적인 노예 상태에 놓인다고 말한다. 자연법칙에 대한 무지가 공포스러운 신의 모습을 만들어내고, 권력은 그 잘못된 믿음과 미신을 이용해 대중을 통치한다고 본 것이다. (85쪽)
그렇기 때문에 미신을 발생시키고, 유지하고, 조장하는 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88쪽)
우리가 부분을 관찰하는 것은 오직 전체를 함께 판단하기 위해서다. 또 모든 원인을 검토하는 것은 모든 결과를 알기 위해서다. (113쪽)
복잡한 문제에 접근할 때 우리는-우리 스스로가 자연적 조건으로 인해 엄격한 규칙과 좁은 테두리 속에 갇혀 있으므로-그 문제를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요소들을 구별해 하나씩 자세히 조사해보아야 하며 모든 것을 아주 단순화시켜 고찰해야 한다. 원리들이 미치는 영향에 따라 이 복잡한 문제를 고찰할 뿐만 아니라 이 문제가 미치는 영향에 비추어 다시 원리들을 고찰해야 한다. 우리가 다루는 주제를 그와 유사한 것들과, 심지어는 그와 반대되는 성질을 가진 것들과도 비교해보아야 한다. (142쪽)
하지만 인간적 정의, 다시 말해 정치적 정의는 인간의 행위와 가변적인 사회조건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어서, 문제의 행위가 그 사회에 얼마나 필요한가 혹은 유용한가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다. (152쪽)
여성이 이렇게 아름답지만 무익한 존재로 전략한 것은 잘못된 교육 때문이다. 이런 교육의 이론적 토대가 된 것은 우리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암컷으로 보고, 현모양처보다는 매력적인 연인으로 만들려고 한 남성학자들의 저술들이었다. (157쪽)
남자든 여자든 한 인간으로서 자기만의 개성을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목표이므로, 모든 것이 이를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161쪽)
반성 없이 맺어진 관계는 고통 없이 깨질 수도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관계가 깨진 데서 오는 고민이나 배신당한 영혼의 비통한 놀라움이나 완전한 신뢰 뒤에 이어지는 의심, 어떤 한 사람을 의심한 결과가 세간 전체로가지 퍼져가고 스스로 짓밟은 존경을 돌이킬 수 없게 된 것을 보고서야 사랑하기 때문에, 고민하는 마음속에서는 무언가 신성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함께 느끼지 않고 상대한테만 느끼게 했다고 믿는 그 애정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깨다는 것이다. (207-208쪽)
연구와 관찰, 철학과 경험은 결코 상대를 경멸해서도 안 되고 배제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상대를 상호 보증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213쪽)
나는 종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며, 어느 한 종에서 만들어졌다고 인정되는 변종이 그 종의 자손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같은 속에 속하는 종들은 일반적으로 이미 소멸해버린 종으로부터 얻어진 자손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나는 자연 도태가 변화의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는 것도 확신하는 바이다. (251쪽)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물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것의 내용들 때문인데, 모든 역사적 발전은 이 내용들의 가치를 이미 전제한다. (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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