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사회 -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
카롤린 엠케 지음, 정지인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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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때, 한 아이가 인도네시아에서 살다가 저희 반으로 온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그리고 종례 시간, 담임 선생님의 말씀으로 사실로 확인됐지요. 그러자 몇 아이들은 인도네시아어를 하는 토인(土人)이 오는 거 아니냐며 호들갑을 피웠어요. 단지 인도네시아에서 몇 년 살고 온다는 것만으로 그를 우리와 다른 눈으로 보려고 했었지요. 더 나아가 증오와 혐오를 했을지도 모르고요. 그런데 며칠 후, 그 아이가 저희 반으로 왔어요. 우리와 다르지 않더라고요. 아버지께서 인도네시아에서 근무를 하게 되어, 몇 년 생활했다는 그 아이. 능숙하게 우리말을 할 줄 알더라고요. 게다가 그곳에서 외국인 학교에 다녔다고 했어요. 그래서 유창하게 영어를 할 줄 알았고요. 학교 성적도 좋았어요. 성격도 좋았고요. 얼굴도 한국인의 얼굴이었고요. 그 아이는 그렇게 우리와 어울릴 수 있었지요. 그런데 전학을 오는 아이가 인도네시아 아이였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달랐을 거예요. 


 '한 번도 멸시당해본 적 없는 사람, 한 번도 사회적 경멸에 맞서 방어할 필요를 느낀 적이 없는 사람, 보이지 않는 존재 또는 괴물 같은 존재로 만드는 틀에 갇혀본 적 없는 사람은 모욕당하거나 상처를 입는 순간에도 '분노한' 사람이나 '유머감각 없는' 사람, '탐욕스러운'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아무렇지 않게 유쾌한 척 고마워하는 척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상상도 못할 것이다.' -「1장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중에서 (123~124쪽)


 독일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카롤린 엠케는 말해요. 증오, 혐오에 대해서요. 증오와 혐오를 당하는 사람의 아픔을 이야기해요. 성소수자인 자신의 경험도 담겨 있겠지요. 


 '증오와 순수의 광신주의에 맞서려면 시민사회와 시민들이 나서서 배제와 포함의 기술들에, 어떤 사람은 보이게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보이지 않게 만드는 인식의 틀에, 개인을 집단을 대표하는 표본으로만 보는 시선의 체제들에 저항해야 한다. 모든 사소하고 저열한 형태의 멸시와 굴욕에 용기 있게 이의를 제기해야 할 뿐 아니라, 배제된 이들을 지원하고 연대할 수 있는 법률과 실천도 필요하다. 그밖에 다른 관점들과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인식시킬 수 있는 다른 서사들도 필요하다. 증오의 틀을 무너뜨려야만, "전에는 서로 다른 것들만 보였던 곳에서 비슷한 것들을 발견할" 때에만 공감이 생겨날 수 있다.' -「3장 ‘순수하지 않는 것에 대한 찬미’」중에서 (218쪽)


 동질성, 본연성, 순수성을 내세우며, 다름을 멀리하려는 사람들의 얼굴을 지은이는 그리고 있어요. 매우 사실적으로 자세히 그리고 있어요.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안에서 비슷한 것을 보며, 공감할 수 있다면 함께 할 수 있지요. 다양함이 함께 하는 곳에는 건강함이 있을 거고요. 그렇게 하기 위해 맞서야겠고요. 


'혐오와 증오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단지 그것을 추악한 것으로 규정하고 배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고 키워낸 불평등과 차별에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 '혐오사회'는 그 쉽지 않은 싸움을 위한 좋은 야전교범이다.' -「추천의 말 ‘혐오의 시대를 종횡무진하는 날카로운 시대진단’」중에서 (16쪽) 


 추천의 말에서 박권일(저널리스트,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88만 원 세대' 저자)이 한 말이에요. 또, 추천의 말에서 이 책의 장점을 집중력, 통찰력, 균형 감각이라고 하고요. 그리고 이런 말도 하지요. '이 책에서 혐오는 때로 '증오'로 표기되고, 맥락에 따라서 '분노'나 '멸시'로 대체되기도 한다. 엄밀히 따지면 서로 구별되는 상이한 감정들이다. 그러나 관건은 나타나는 감정이 혐오인가 증오인가 여부를 따지는 게 아니라 실제로 사회에서 '차별'이 발생하는가 여부다'라고요. 그의 시선에 저도 함께 해요. 다만, 저에게 이 책이 쉽지만은 않았지만요.  


헌법 제1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헌법재판소 "헌법 제11조 제1항의 평등의 원칙은 … 법의 적용인 입법에 있어서 불합리한 조건에 의한 차별을 하여서는 안 된다는 상대적·실질적 평등을 뜻하는 것이므로, 합리적 근거 없이 차별하는 경우에 한하여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1999.7.22. 98헌바14)"

 우리 헌법 제11조 제1항의 평등은 상대적, 실질적 평등이지요. 즉 평등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합리적 근거 없이 차별을 했지요. 자의적으로 했어요. 그들에게서 우리와 다른 것들만 보며, 그들의 눈높이와 함께 하지 않았지요.  


 '증오의 손아귀에 사로잡혀 그 속에 홀로 남겨진 사람들은 … "바닥 모를 깊은 수렁에 빠졌다"고 느낄 것이다. 그들에게는 딛고 설 바닥이 없다. … 모든 이가 딛고 설 수 있는 튼튼한 지반을 닦아놓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머리말 ‘혐오와 증오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중에서 (28쪽)


 차별이 있어 증오를 받은 사람들. 작가의 머리말에서 강하게 말한 것처럼 수렁에 빠진 그들이 딛고 설 수 있는 튼튼한 지반을 닦아놓도록 노력해야겠어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하면서요. 


 이 책 '혐오사회'는요. 제게 느낌표 같은 책이에요. 차별로 태어난 증오와 혐오에 대한 느낌표요. 그에 맞서서 나아가게 하는 느낌표예요. 이 느낌표를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싶네요. 





나나흰 6기로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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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8-10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주디스 버틀러의 <혐오 발언>보다 읽기 쉬울 거라 믿습니다. ^^

사과나비🍎 2017-08-14 01:12   좋아요 0 | URL
아, 제가 댓글을 이제서야 봤네요~^^; 너무 늦은 답글 죄송해요~^^; 아, 제가 주디스 버틀러의 <혐오 발언>이라는 책을 안 읽어 봐서요~^^; 그나저나 cyrus님은 무슨 책이든 쉽게 읽으실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