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프랑스는 시골에 있다 - 먹고 마시는 유럽 유랑기
문정훈 지음, 장준우 사진 / 상상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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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간 지 오래됐다. 코로나19라는 불청객으로 낯선 단어가 된 여행. 그 여행에 대해 누군가 말했다. 여행을 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더 새로워지고, 더 넓어진다고. 옳은 말이다. 여행에 약(藥)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행에는 독(毒)도 있다. 다만, 그 독은 약에 중화된다. 그렇게 되면서, 약의 효능을 증진시키거나 감퇴시킨다. 여행 예찬론자들은 여행의 독으로 여행의 효능을 극대화시킨 사람들일 것이다. 그래서 동적(動的)이다. 나는 어떤가. 나는 힘 절약주의자다. 그래서 정적(靜的)이다. 여행의 약효를 알면서도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여행의 독이 여행의 약효를 많이 감퇴시키는 건가. 그래도 막상 여행을 하게 되면, 나름 즐긴다. 나에게도 확실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여행. 그런 여행이라는 낱말이 이제는 너무 멀리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힘 절약하며, 집에 있는 것이다. 이럴 때는 영상이나 책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수밖에 없다.

 가지 못하는 여행의 미련을 살짝 두고 있을 때, 프랑스 여행을 다룬 책을 만났다. 그런데, 프랑스 시골을 여행한다. 특이하다.


 '유럽의 매력은 파리, 런던, 뮌헨 같은 대도시가 아닌 시골에 있다. 물론 처음 유럽을 간다면 누구나 유명한 빅벤 앞에서,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긴 하겠지. 이해는 한다. 그러나 그게 그 지역 주민의 삶과 정서와 어떤 개연성이 있고, 그 지역의 문화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을까? 한국 사람들 중 남산타워에 가본 사람은 몇이나 있고, 63빌딩엔 몇 번이나 올라가 보았을까? 이런 구조물들은 한국 사람들의 삶과 문화와 그다지 개연성이 없다는 것을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보여줘야 할 것이 바로 우리의 밥상이다. 밥상에 뭐가 올라갈까? 그걸 알기 위해 나는 시골로 간다. 그곳에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있고,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고 있다.' -'프롤로그 '시골 여행을 시작하며' 중에서. (17~18쪽).


 그렇다. 이 책에 글을 담은 문정훈 교수의 말이다. 서울대 농대 교수라는 그. 그는 시골을 좋아하고, 시골 밥상을 좋아한다. 그곳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이해하고자 시골로 가고 시골 밥상을 만난다고 한다. '세계 시골 전문가'라는 별칭이 있다는 그. 그이 책에 사진을 담은 장준우 셰프, 그리고 몇 명의 동행과 함께 프랑스 시골 여행을 시작했다. 시기는 아마도 2019년 7월 초인 듯하다. 장소는 부르고뉴 지방과 프로방스 지방. 지도를 보니, 프랑스의 중동부와 남동부 지방이다. 부르고뉴 지방에서는 마콩, 브레스, 코트 도르, 보졸레 지역을. 프로방스 지방에서는 론 강 남부, 프로방스 알프스, 프로방스 지중해 지역을 다녔다.

 포도밭에서는 나무 아래 땅을 제대로 관찰할 것을 그는 추천한다. 시골 여행의 백미라면서. 그리고 땅을 관찰하려면 흙을 직접 만져봐야 한다고 한다. 또, 포도뿐 아니라 떼루아가 와인이 된다고 한다. 떼루아는 포도밭을 둘러싼 전반적인 환경을 일컫는 말로 바람, 태양, 흙 등이다. 역시, 뭔가 안다. 이런 그브레스 지역에서는 토종닭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프로방스 지방에 가서는 꽃과 허브 이야기도 하고. 물론, 이 두 지방에서 꼭 들어가는 이야기는 와인 이야기고.


 '많은 이들에게 프랑스는 화려하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내 머릿속의 프랑스 감성이란, 과한 듯 과하지 않고 어색한 듯 세련된, 그러니까 알고 보면 겸손한 그것이다. 이게 내 마음속 ‘프랑스다운’ 느낌이다.' -'페루즈 마을' 중에서. (89~92쪽).


 '우리에게 그가 처음으로 내놓은 안주는 토종닭의 벼슬볶음이었다. 다시 한번 정확하게 말하지만 닭벼슬볶음이다. 닭의 머리에 달린 그거. 치킨의 나라 대한민국에서도 먹지 않는 바로 그것!' -'도미니크 아저씨네 농장' 중에서. (79쪽).


 '웰컴 드링크를 한 잔 마시니 정원에서 갓 딴 샛노란 오이꽃 튀김이 식탁에 올랐다. 태어나서 처음 본 오이꽃이 튀긴 오이꽃이라니!' -'레스토랑 라 샤사네트' 중에서. (230쪽).


 프랑스 시골 여행기. 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별미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닭벼슬볶음도, 오이꽃 튀김도, 그밖에 여러 진미도 맛보았다. 부르고뉴 지방은 버터와 크림을. 프로방스 지방은 올리브오일과 식초를 요리에 주로 사용하는 듯하다. 그런데, 이 두 지방의 교집합이 있다. 바로, 와인이다. 부르고뉴 뫼르소의 와인. 이 와인은 화이트 와인이다. 또,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 품종으로 빚은 와인. 이건 레드 와인이다. 참, 부르고뉴에는 한국인도 와인을 생산한다. 박재화 씨로 일본 남성과 결혼했다고 한다. 라벨에 한자(漢字)로 천지인이 쓰여 있다고. 만화 '신의 물방울'에 이 부부가 생산한 뫼르소 와인이 소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프로방스 지방에는 로제 와인이 유명하다고 하고.

 이런 식도락(食道樂). 무척 즐거웠으리라. 이런 프랑스의 시골 밥상은 그들의 삶과 정서를 담았으리라. 문정훈 교수는 프랑스다운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과한 듯 과하지 않고 어색한 듯 세련된, 알고 보면 겸손한 그것'이라고. 이런 감성이 담긴 프랑스 시골 음식! 맛보고 싶다!


 아마 초등학생 때였을 거다. 어느 여름 방학에 외할머니 댁에 갔었다. 그때 먹었던 시골 밥상. 텃밭에서 난 채소로 요리를 하셨던 기억이 난다. 외할머니의 논에서 난 쌀로 지으신 밥도 있었고. 그 밥상에는 외할머니의 삶과 정서가 담겼으리라. 그 시골 밥상을 받을 때마다 느낄 수 있었다. 외할머니께서 안 계신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프랑스 시골을 여행하며 그곳 음식을 다룬 책을 보니, 그 생각이 났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의 삶과 정서도 생각했다. 글과 사진으로 만났지만, 그래도 내 미각을 자극하며, 여행의 약효가 나타날 수는 있었다. 생각하건대, 외할머니의 시골 밥상에 대한 기억이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리라. 또, 글과 사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정성이 보였기 때문이리라. 알맞은 설명과 솔직한 감상의 글. 거기에 감각적인 사진. 그들이 남긴 발자국은 아름다웠다.

 코로나19의 활개여행이 멀어진 요즘. 프랑스 시골 음식 여행기인 이 책으로 상상의 여행을 떠나는 것. 그들의 발자국을 함께 밟는다는 것. 충분히 약이 된다. 세상을 보는 눈이 더 새로워졌고, 더 넓어졌기에.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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