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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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 이야기만큼이나 익숙하고 많은 이야기가 사랑 서사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좋아하고, 중요한 서사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사랑은 나만의 사랑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에서 사랑에 빠진 이들을 두고 테리 이글턴은 이렇게 말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사랑에 빠진 인물들이 가장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이고, 가장 진실하면서도 가장 허위적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랑은 궁극적인 자기 인식이며, 제일 소중하고도 유일한 존재양식이다. 그렇지만, 사랑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해왔고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또 하게 될 지겹게도 진부하고 평범한 것이기도 하다."1 이렇게 사랑은 양가성(兩價性)을 지니고 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도 사랑의 양가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상의 여인과 불륜이라는 불완전하고 위험한 사랑. 그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사랑을 '도쿄 타워'라는 소설에서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오후 4시, 이제 곧 시후미한테서 전화가 걸려온다. 토오루는 생각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나는 그 사람의 전화를, 이렇듯 기다리게 되었을까.' -10쪽.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빠져드는 거야.' -57쪽.


 '시후미는 마치 작고 아름다운 방과 같다고, 토오루는 가끔 생각한다. 그 방은 있기에 너무 편해서, 자신이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117쪽.


 '기다리는 것은 힘들지만, 기다리지 않는 시간보다 훨씬 행복하다.' -122쪽.


 두 소년이 있다. 고등학교 동창. 열아홉 살에서 스무 살이 된다. 두 소년은 연상의 연인과 사랑을 한다. 토오루는 시후미와, 코우지는 키미코와 사랑을 한다. 시후미는 스무 살 이상이 많고, 키미코는 열다섯 살이 많다. 이 연상의 두 여인에게는 남편이 있다. 불륜이다. 토오루는 시후미 하나만을 바라본다. 코우지는 귀여운 여자 친구 유리도 있고, 여러 여자를 만난다. 전에 여자 동급생의 엄마인 마흔두 살의 아츠코와 사랑을 하기도 했고. 두 소년, 각자 사랑의 형태가 다르다. 그 다름이 실처럼 교차하며, 촘촘한 이야기를 직조(織造)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풍경은 비에 젖은 도쿄 타워이다.' -9쪽.


 '"......'하지만' 난 너의 미래를 질투하고 있어."' -131쪽.


 '"같이 살지 않아도, 이렇게 함께 살아 있어."' -251쪽.


 슬픔의 씨앗을 품은 불완전하고, 위험한 사랑이기에 더 애틋한 것일까.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없음을 알기에 안타까운 사랑. 그럼에도 사랑으로 함께 살아 있는 연인. 사뭇 다른 토오루와 코우지는 앞으로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어떻게 채울까. 따스한 행복에 물들 수 있을까. 헤어짐의 쓰라림과 상처의 차가움도 녹일 수 있을까.


 사랑이 진부하고 평범한 것이라며 기대 없음에 무한 수렴하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틈새에서 낯선 사랑의 감각을 마주하게 되면, 기대 있음에 무한 발산하게 된다. 에쿠니 가오리의 이 소설에서 내가 그랬다. 상투적인 불륜 이야기로 보였다. 그런데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빠져드는 거야.'라는 말을 문득 떠올리게 된다거나. '기다리는 것은 힘들지만, 기다리지 않는 시간보다 훨씬 행복하다.'라는 말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그때 사랑을 다시 기대하게 된다. 사랑은 '궁극적인 자기 인식이며, 제일 소중하고도 유일한 존재양식'이라고. 알다시피 김현식도 노래하지 않던가.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에 울고,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에 웃고, 그것이 바로 사랑 사랑 사랑이야.'2라면서도.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 줘.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3라고. 이런 사랑의 양가성. 에쿠니 가오리는 그녀만의 섬세한 감성으로 그려 냈다. 너무나 다른 두 소년의 이야기로 잔잔하게. 

 그나저나 나도 사랑을 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불륜은 아니 될 것이고. 나이 차이가 많은 연상의 연인은 이제 내 나이에는 무리고. 내 사랑은 어디에 있는지.    




 덧붙이는 말.


 이 '도쿄 타워'는 2005년 국내에 처음 나온 책의 2020년 출간 15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개정판이다.  

                  


 

  1. 테리 이글턴, '셰익스피어 정치적 읽기', 김창호 옮김, 민음사, 2018, 46쪽.
  2. '사랑 사랑 사랑'의 가사 중에서.
  3. '내 사랑 내 곁에'의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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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4-01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꼼꼼한 각주 달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저는 논문 쓸 때만 해 봤어요. ㅋ

이 저자의 <반짝반짝 빛나는>이란 소설을 읽었어요. 느린 흐름이어서 마치 수필을 읽는 것 같은 소설로 기억합니다.

사과나비🍎 2020-04-02 00:57   좋아요 1 | URL
아, 각주요?...^^; 나름 인용한 건 하려고는 해요~^^; 칭찬의 말씀 감사해요~^^* 페크님~^^*

아, 저는 그 책 안 읽어 본 것 같아요~^^;
에쿠니 가오리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인 것 같네요~^^;
맞아요~ 저도 잔잔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느린 흐름~ 역시 페크님도 그렇게 느끼셨네요~^^*
그나저나 좋은 하루 보내셨기를, 그리고 지금은 좋은 꿈을 꾸시고 계시기를 바랄게요~^^*